외부칼럼 서초포럼

[서초포럼] 권력욕의 화신 리처드 3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2.15 18:52

수정 2022.02.15 19:08

[서초포럼] 권력욕의 화신 리처드 3세
등불은 파리하게 타고 있구나. 벌써 한밤중이야. 덜덜 떨고 있는 내 몸은 공포의 싸늘한 땀방울에 흠뻑 젖어있어…. 자객이라도 들어와 있나? 아냐. 살인자는 바로 나지. 가증할 죄악들을 자행한 나 자신. 내가 바로 악당이야.

위 독백은 리처드 3세가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의 유령이 나타나는 악몽을 꾼 후 그가 저지른 악행들을 되돌아보며 양심의 가책과 함께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다. 그동안의 이 모든 행위는 나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이 전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악당이 돼서라도 욕망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며 온갖 짓을 저질렀다. 그 결과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 그리고 비참한 죽음이다.

셰익스피어의 사극 '리처드 3세'는 15세기 영국의 왕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인 리처드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왕권을 잡으려는 욕망으로 자행한 사악한 행동들을 그린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에 대한 울분과 권력욕에 휩싸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는 누구든 제거한다. 그는 12세 된 조카 에드워드 5세를 비롯해 자신의 친인척 등 수많은 이들을 살해한다.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모습일까? 머리에 금방 그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셰익스피어의 리처드의 행위를 보라. 바로 그가 그러한 인간의 전형임을 깨달을 것이다. 왕관을 향한 끝을 모르는 야망과 무자비한 간교함의 화신인 리처드는 그의 어머니마저 혀를 내두르는 악한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주위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는 사태를 정반대로 왜곡하고, 조작하고, 루머와 왜곡된 정보들을 유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언행과 폭력을 일삼고, 순리와 상식을 무너뜨리는 화법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나라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자신의 목적만을 거머잡기 위해 전횡을 저지른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예들이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지도 못하는 리처드의 주위 인물들과 관객들마저도 매료시키는 극중의 여러 에피소드들 또한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인성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 인성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모자란 점은? 인간은 왜 이처럼 사악한 일들을 거부하지 못할까? 셰익스피어는 리처드의 악행에 저항하는 이들도 보여주지만, 직접 피해가 오지 않으면 수동적으로 눈을 감거나, 그러한 악행에 굴복해 묵인하거나 모른 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러한 악행에 적극 동조해 협조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리처드 3세는 단연코 악당이다.
그런데 그 주변의 인물들처럼 관객은 그의 마력에 넘어간다. 그러한 지도자의 전횡에 어떤 자세가 바람직할까? 리처드에 의해 조작당하고 파멸해가는 백성들과 나라의 비참한 모습을 보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준다.
15세기 영국에서 벌어졌던 사실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면 나라와 백성의 운명이 어떠한가를.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