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을 연달아 만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갈등 해결 방안으로 '민스크 협정'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숄츠 총리는 15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 후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건 우리 책임"이라며 "푸틴 대통령과 나는 노르망디 형식이 갈등 해결에서 중요하는 데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노르망디 형식은 2015년 우크라 동부 분쟁 해결을 위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가 맺은 민스크 협정 당사국간 협상을 말한다. 당시 4개국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에서 회동해 이렇게 불리게 됐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 8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상과의 연쇄 회담 이후 "우크라이나 문제는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의 기본은 민스크 협정일 수 밖에 없다"며 "이는 평화 구축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갈등 당사자인 푸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부터 '민스크 협정' 이행에 대한 긍정적이고 명확한 약속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럽 강대국 정상들이 중재 외교를 하는 동안 연달아 언급한 '민스크 협정'이 갈등 해결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협정 체결 후 7년이 지난 시점에도 이해관계가 얽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민스크 협정이 이제 와서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돈바스 지역 분쟁 해결 위한 '민스크 협정'…핵심 조항은?
'민스크 협정'은 2014~2015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잦은 분쟁을 억제하기 위해 이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유럽 안보 협력기구(OSCE)의 중재 아래 체결한 협정이다.
친러시아계 사람들이 대부분인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이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주장하며 잦은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지원을 이어갔다.
잦은 분쟁으로 피해가 커지자 2014년 9월 갈등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은 OSCE의 중재 아래 12개항목으로 구성된 '민스크 협정1'에 합의했다.
그러나 협정 체결 2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와 분리주의자들 간에 충돌이 발생하며 협정은 유명무실해졌다.
이후에도 협정 체결 당사자 간 '민스크 협정1' 위반을 둘러싼 공방은 계속되자 이듬해 2월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루한스크, 도네츠크 대표들이 벨라루스 민스크에 모여 16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13개 조항이 담긴 '민스크 협정2'에 합의했다.
'민스크 협정2'에서 핵심 조항은 Δ즉각적이고 완전한 휴전 Δ전투 지역에서 중화기(heavy weapons) 철수와 50㎞ 안전지대 설정 ΔOSCE를 통한 휴전 및 무기 철수 감시 Δ분쟁 지역의 사회·경제적 링크 복원 Δ돈바스 지역으로부터 모든 외국군 및 무기 철수 Δ2015년 말까지 DPR과 LPR의 특별 지위 부여하는 헌법 개정 등이다.
실제 OSCE는 협정 체결 이후 이 지역에 대한 감시를 이어가면서 충돌 횟수는 줄어들었다. 또한 협정 체결 후 2015년 2월 말까지 돈바스 지역에서 중화기 철수가 이루어지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조항들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포함해 이해당사자들이 이견을 보이면서 지금까지도 주요 조치들은 거의 이행되지 않고 있다.
◇'러·우크라 조항 해석 달라'…민스크 협정 이행의 걸림돌
민스크 협정이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각 조항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두 국가 사이에는 조항 이행 순서와 관련해 큰 이견이 존재한다.
러시아는 협정에 따라 돈바스 지역에서 선거를 먼저 실시해 자치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분리자의자들이 먼저 무장 해제를 하는 등 분쟁 종결이 정치 개혁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러시아는 분리주의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독립시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해당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주장하며 러시아의 간섭을 최소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러시아가 지원하는 분리자의자들이 자국 의회에 진출할 경우 나토 가입을 막을 수 있다고까지 우려하고 있다.
FT는 현재에도 민스크 협정 이행의 걸림돌은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헌법이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분리주의자들에게 60만 개 이상의 러시아 여권을 발급했다.
게다가 러시아 국가두마(의회, 하원격)는 이날 돈바스 지역에서 독립을 추구하는 DPR과 LPR을 독립국가로 공식 인정할 것을 푸틴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까지 하면서 우크라이나와의 입장 차이는 더욱 커졌다.
CNN은 러시아가 협상의 주체자로 우크라이나와 직접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 점도 민스크 협정 이행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분쟁의 당사자라고 주장하며 둘 사이에 협상을 원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며 우크라이나가 협상해야할 당사자는 반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지역이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들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젤렌스키 동의' 얻었다는 숄츠…우크라 국내 여론은 부정적
숄츠 장관은 지난 14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후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협정 이행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돈바스의 특별 지위, 헌법 개정, 민스크 협정 이행을 위한 선거법 초안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단순히 민스크 협정 이행만 하는 것은 러시아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양보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FT는 전했다.
서방 국가 외교관들은 젤렌스키가 현재 러시아가 아닌 분리주의자들과 직접 협상할 가능성도 배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그의 정치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사안에 정통한 고위 관리는 "협정이 체결된 지 7년이 지난 시점에서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기 때문에 분리주의자들은 사실상 러시아 시민"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지금 선거를 실시할 경우 이 지역에서 배출될 친러시아계 인사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는 2015년 정부가 러시아 입장을 많이 반영한 헌법 개정을 시도했을 때 폭동이 일어나 보안관 3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CNN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현 상황이 분리주의자들을 내세워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민스크 협정 부활을 원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이것이 실현되면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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