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대권주자 군복 유감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2.16 18:40

수정 2022.02.16 18:40

[노주석 칼럼] 대권주자 군복 유감
대통령선거 때면 군복을 입은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군부대를 방문하는 사진이 언론지상에 오르내린다. 국민의 안보심리에 편승한 계산된 정치행위다. 올 대선도 다르지 않았다. 양강을 이루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거동이 부각됐다. 두 후보 모두 군 면제자인 게 공교롭다.

이 후보는 김포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하면서 빨간 명찰이 달린 해병대 방한복 상의의 옷깃을 세운 채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군 관계자에 둘러싸여 걷는 모습이 포착됐다.
윤 후보는 군복 상의에 헌병 완장까지 차고 비무장지대 육군3사단 OP(관측소)를 찾았다.

이 후보는 대선후보의 품위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군 입대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입수보행'에 걸려 얼차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후보 주변에 퇴역 장성들이 포진하고 있었지만 이등병도 아는 보행 시 입수·탈모·취식 금지의 3대 수칙을 후보에게 귀띔해주지 않았다. 이 후보는 이날 해병대 독립 공약을 내놓았다. 인지상정이다. 팔각모의 환호에 자기도 모르게 손을 넣었을 것이다.

윤 후보의 방문 직후 유엔군사령부는 민간인이 군복 차림으로 비무장지대를 출입했으니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밝혔다. 매우 이례적이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정치인들의 군복 차림 관행에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비무장지대엔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군사적 완충지대를 대신 관리해주는 유엔사 처지에선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없었을 것이다.

굳이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4성 장군 출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물론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습 3대 또한 군복을 입고 군부대를 방문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1993년 문민정부 수립 이후 시작된 이 관행은 유력 대권주자의 뒤에 줄을 선 군 출신들이 벌이는 기획홍보에 지나지 않는다.

'군복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군복단속법) 제9조에는 "군인이 아닌 자는 군복을 착용하거나 군용장구를 사용 또는 휴대해서는 안된다"고 적혀 있다. 또 "유사군복을 착용해 군인과 식별이 곤란하여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들어있다. 문화, 예술활동이나 해병대전우회 같은 공익 차원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군복 착용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대통령령인 군인복제령에 의하면 대통령과 국방장관에게는 군복 착용이 허용된다. 그러나 지난해 말 백령도 해병부대를 부부동반으로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의 해병 야전 상의 커플룩은 좀 심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는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군복은 그만한 각오로 입어야 한다"는 명대사가 있다. 2016년 38.8%의 시청률을 기록한 TV 미니시리즈 '태양의 후예'에서 주인공 유시진 대위가 남겼다.
군복을 입은 민간인의 가짜군인 행세는 곤란하다. 대권주자의 군부대 퍼포먼스를 멈출 때가 됐다.
군복 차림 정치인의 전방부대 방문 금지를 제안한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