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널 놓아줄게. 걔 죽이고 나도 죽을게."
전 여자친구 C가 헤어진 연인 A로부터 받은 메시지에는 이 같이 섬뜩한 내용의 음성이 담겨 있었다. C가 관계를 끊으려 할 때마다 "헤어지면 B도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말해온 A의 최후통보였다. B는 A와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30년 지기였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악몽은 2019년 9월께 A가 B에게 자신의 여자친구 C를 소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C의 집에서 다 함께 술을 마신 후 잠이 들었던 사이 B가 C를 강간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의 항의에 B는 범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후 경찰 조사에서 변명으로 일관하며 A와 C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C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격분한 A는 B가 구속되기를 탄원해왔으나, B가 불구속 기소되고 사과조차 하지 않자 그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듬해 3월 A는 그동안 자신과 연락을 피해온 B에게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잠깐 보자고 전화를 걸었다. A는 준비한 흉기를 몰래 자신의 외투 주머니에 숨긴 채 B와 만나 함께 술을 마셨고, 근처 모텔로 이동해 자리를 이어갔다.
다음날까지 밤새 술을 마신 둘은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흥분해 몸싸움을 벌였다. B가 끝내 사과하지 않자 A는 소지하던 흉기를 꺼내 B의 오른손과 등, 목, 옆구리 등 부위를 수차례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A의 잔혹한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여자친구를 강간한 B에게 혐오감과 복수심을 느끼던 A는 B의 특정부위를 훼손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이를 사진으로 찍어 B의 친구에게 전송했고, 훼손한 특정부위를 검은 봉지에 담아 헤어진 여자친구 C가 사는 집 현관문에 걸어놓는 엽기적인 만행도 벌였다.
재판에 넘겨진 A는 B가 그랬던 것처럼 범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변명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B와 흉기를 놓고 진실을 말하는 특전사 의식을 위해 흉기를 가지고 간 것일 뿐 살해 계획이 없었고, 대화 도중 B가 모욕적인 말을 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또 B를 살해하기 전에 이미 특정부위를 훼손한 것이어서 사체손괴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부검감정서와 법의학연구소 감정결과, 살해 후 사체를 손괴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어 "피해자 B가 법원에 기소된 상태였으므로 재판이 이루어졌다면 B가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았을 것임에도 피고인 A는 준강간 사건 첫 공판기일이 열리기도 전에 피해자 B를 살해했다"며 "이로써 C가 정당한 법적 절차를 통해 B의 준강간 사실을 밝혀 처벌하고 피해를 회복할 기회도 없어져 버렸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 A는 준강간 사건 이후 C에게 집착하며 흉기로 협박해 특수협박죄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고, C가 헤어지자고 할 때마다 '헤어지면 피해자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말을 반복했다"며 "피고인 A는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뒤 자신은 C의 집 주차장 배수관에 목을 매는 등 C가 헤어지자고 한 것에 대해 복수하거나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해자는 상당한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의 유족들도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피고인의 엄벌을 원하고 있다"며 "피고인은 과거에도 수차례 협박, 폭행으로 벌금형을 받거나 수사를 받는 등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사용하는 범행을 반복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피해자 B가 A의 범행을 유발한 경향이 강한 점은 유리한 양형으로 참작됐다. A에게는 징역 20년 선고와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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