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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왜 묶어둬? 음악·그림·한우·빌딩까지 쪼개 투자한다 [저축의 굴욕 <상>]

주식·코인 등 짜릿한 수익 경험
'적금은 들수록 손해' 인식 강해
4대 은행 2030 신규 적금계좌
2019년 정점 찍고 2년째 감소
주식·펀드 투자금은 2배 늘어
돈을 왜 묶어둬? 음악·그림·한우·빌딩까지 쪼개 투자한다 [저축의 굴욕 <상>]

#.대학 졸업 후 모교 연구실에서 일하는 20대 남성 A씨는 금리 9%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희망청년적금이 출시된다는 소식에도 심드렁하다. 이자율이 나쁜 건 아니지만 1200만원을 2년간 묶어두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벌써 주식에 2년, 코인은 4년째 투자하고 있다. 한때 수익률 100%를 넘겼던 짜릿한 경험을 잊지 못한다. 비록 지금은 수익률이 좋지 않지만 적금에 매인 2년 동안 다시 상승세를 탈 수 있지 않을까. 정부가 얹어준다는 36만원은 몇 시간 만에도 벌 수 있는 돈인데 '적금은 손해'라는 생각이다.

'재테크의 기본'이었던 저축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의 목돈 마련 필수코스였던 예적금 가입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일찍부터 금융교육에 노출된 MZ세대의 선택권이 넓어진 것인지, 재테크 수단의 진화인지, 젊은 층에 팽배한 한탕주의인지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분명한 것은 목돈 모으기의 주력창구였던 저축의 자리를 2030세대에선 주식, 가상자산, 부동산, 심지어 그림·음악·한우까지 다양한 투자수단이 채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2030 예적금 자산 처음으로 줄어

20일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주 연령이 39세 이하인 가구의 수시, 적립, 예치식 저축자산 평균금액은 249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도 2677만원보다 6.9% 줄어든 수치다. 이 수치는 세 기관이 통합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꺾였다.

지난 2013년 1729만원이었던 예적금 자산은 이후 꾸준히 늘어 2017년에는 2000만원을 넘었다. 그 뒤에도 2020년까지는 매년 10%가량 성장했다.

4대 시중은행의 2030 신규 적금 계좌수 추이를 분석한 결과도 유사했다. 지난 2015년 300만계좌를 돌파한 적금은 2019년 400만계좌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다.

2020년에 390만계좌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다가 지난해에는 333만2224계좌로 전년도(392만1965계좌)에 비해 약 15% 감소했다. 그 전까지 2030세대가 4대 시중은행에서 새로 만든 적금 계좌수는 2015년부터 5년간 매년 10%의 증가율을 보였다.

줄어든 2030의 적금 투자는 주식·채권·펀드로 이동하고 있었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30가구가 주식, 채권, 펀드 등에 투자한 평균 자산금액은 2020년 542만원에서 지난해 1047만원으로 2배가량 뛰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이 분야 자산금액이 평균 500만원 선에서 움직였음을 감안하면 지난해 전례 없는 상승폭을 보인 것이다.

■빚 낸 사람이 또 낸다

특히 부채가 없는 가구보다 있는 가구에서 예적금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낮았다. 지난해 부채가 있는 39세 이하 가구에서 예적금 자산 평균과 주식 자산 평균은 각각 2257만원과 1115만원으로 나타났다. 빚이 있는 가구는 자산의 3분의 1을 주식에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부채가 없는 가구에서는 적금과 주식이 각각 3197만원과 840만원으로 두 자산 간 격차가 4배 수준으로 벌어졌다. 빚 없는 가구는 안전자산을 선호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실물' 자산과 '금융' 자산 간 건전성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39세 이하 세대에서 자산 중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24%에서 2021년 28%로 소폭 올랐지만 같은 기간 금융자산에서 금융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53.8%에서 71.3%로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저금리 기조, 2030세대의 고수익률 경험 및 이로 인한 투자심리 증폭을 이유로 꼽는다. 한성대 김상봉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생활비를 쓰기 위해 적금 개수를 줄이고 코인이나 주식 같은 변동성 높은 상품을 이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2030의 경우 경기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음악·그림·한우·대체불가능토큰(NFT) 등 투자수단이 다양해지고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점도 한몫했다.

신한PWM태평로센터 오경석 팀장은 "MZ세대의 정보 획득력은 옛날과 비교할 수 없다"며 "공모주, 조각투자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만큼 돈을 묶는 것보다는 언제든 빠르게 끌어다 쓸 수 있는 단기 유동자금을 선호한다"고 평가했다.

psy@fnnews.com 박소연 이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