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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정치가 본사 위치까지 바꾸는 기막힌 현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2.27 18:57

수정 2022.02.27 19:04

포스코 지주사 서울 포기
대선 후보들 압박에 백기
포스코그룹이 신설될 지주사 소재지를 포항에 두기로 포항시와 지난 25일 합의했다. 이강덕 경북 포항시장이 하루 앞선 24일 포항수협 앞에서 열린 포스코지주사 서울 설립 반대 어업인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포스코그룹이 신설될 지주사 소재지를 포항에 두기로 포항시와 지난 25일 합의했다. 이강덕 경북 포항시장이 하루 앞선 24일 포항수협 앞에서 열린 포스코지주사 서울 설립 반대 어업인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포스코그룹이 신설될 지주사 본사를 서울에서 포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미래기술 연구개발(R&D) 조직 역시 포항에 본원을 두고 수도권에 분원을 두는 방식으로 바꿨다.
포스코와 포항시는 지난 25일 이같이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27일 밝혔다.

포스코의 새 지주사 소재지는 지난달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이미 결정났던 사안이다. 포스코그룹은 지난해 12월 지주회사 전환 추진을 발표한 뒤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차례로 열고 물적분할을 통한 투자형 지주회사 설립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르면 지주사 포스코홀딩스를 서울에 신설하고, 그 아래에 철강사업 자회사인 포스코는 기존대로 포항에 둔다. R&D 조직은 인재유치 경쟁이 치열한 만큼 서울에 설립하기로 했다. 안건은 출석주주 89.2%의 압도적 찬성으로 확정됐다.

탄소중립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된 만큼 철강산업의 혁신은 포스코 생존과 직결돼 있다. 그 변화를 주도할 중심이 신설될 지주회사이고, 유능한 R&D 인력인 것은 물론이다. 이를 감안한 기업의 판단이었고 주주들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지난 한달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우선 포스코 지주사 본사를 서울에 빼앗길 수 없다는 지역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지주사를 포항에 두지 않을 경우 포항 본사 위상이 내려앉고 투자위축, 인력유출, 세수감소 등이 우려된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포스코 측은 기존과 달라지는 게 없다고 해명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급기야 대선후보들마저 일제히 주민 편에 가세해 포스코를 압박했다.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등 주요 후보들이 빠지지 않고 "지주사는 포항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기존 결정을 철회함으로써 이번 사안은 정치권 공세에 무릎 꿇은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 포스코 측은 "지역과 오해가 있었고, 갈등은 점차 깊어졌고, 극단을 막기 위해 전격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정치권의 압박에 백기를 든 셈이다. 포스코는 정부 지분 하나 없는 순수 민간기업이다. 최대주주가 지분 9.7%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다. 나머지 80%가 외국인, 기관, 개인투자자에게 골고루 분산돼 있다. 엄연히 주주가 따로 있는 기업의 경영상 판단이 포퓰리즘에 편승한 정치공세로 뒤집어지는 것이 합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세기 역사의 포스코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철강회사를 넘어 친환경 미래소재를 기반으로 한 100년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 포스코의 각오다. 이런 기업 미래가 정치로 좌지우지되는 건 구시대적인 행태다.
정치가 자꾸 끼어들면 기업은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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