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가상인간(디지털 휴먼)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불과 반년 전까지 'SNS 광고'를 주업으로 삼던 이들은, 이제 음반을 내고 '가수' 활동까지 뛰어들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확고한 '팬덤'을 형성한 가상인간들이 본격적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한 가상인간의 SNS 팔로워는 10만명을 넘어섰다. 광고 계약금은 '천' 단위에서 '억' 단위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인간들의 종횡무진 활약이 이어지자 가상 캐릭터 만들기에 특화된 '게임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관련 사업에 착수했다. 넷마블의 '제나', 스마일게이트의 '한유아', 카카오게임즈 계열사 넵튠의 '가상아이돌'까지 등장하면서 올해에는 게임사 출신 가상인간들의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 'SNS 광고' 접수한 가상인간, 가요계 접수 나섰다
'한국 1호 가상인간' 로지가 지난 22일 음원을 발매하고 '가수'로 공식 데뷔했다. 데뷔곡 제목은 '후 엠 아이'(Who Am I ·나는 누구인가)다. 회사 측은 "가상인간이 느끼는 로지의 고민으로 시작,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진정한 '나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로지는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전문기업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가 개발한 가상인간으로, 신한 라이프의 광고 모델로 발탁돼 이름을 알렸다. 27일 기준, 로지의 SNS 팔로워 수는 12만3000명. 업계에 따르면 로지의 팔로워수가 급증하면서 연간 광고 계약금 역시 지난해 '천' 단위에서 올해 '억' 단위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인간의 가수 데뷔는 '로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LG전자가 만든 가상 인간 '래아' 역시 가수 데뷔를 앞두고 있다. 래아의 데뷔에는 미스틱스토리의 대표 프로듀서인 가수 윤종신이 직접 참여했다. 그동안 의류·화장품 SNS 광고를 주업으로 삼았던 가상인간들이, 이젠 '가수'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 게임업계發 '가상인간' 전쟁 예고
지난해 '스쳐 가는 유행' 정도로 다뤄졌던 가상인간이 꾸준히 이용자들의 호응을 얻게 되자, 콘텐츠 업계는 너 나 할 것 없이 관련 사업에 발 벗고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게임업계'다. 게임사들은 가상 캐릭터 제작에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27일 남궁훈 카카오 대표이사 내정자는 "카카오게임즈 계열사 넵튠에서 디지털 휴먼을 준비하고 있다"며 "아이돌 그룹 데뷔뿐만 아니라 개인 데뷔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넵튠은 지난 2020년 디지털 휴먼 '수아' 제작사 온마인드에 지분투자를 결정한 데 이어 지난해엔 디지털 아이돌 제작사 '딥스튜디오'와 '펄스나인'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며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넷마블도 가상인간 사업에 '진심'이다. 방준혁 넷마블·코웨이 의장은 지난 1월 "넷마블이 만든 '제나' '리나' '시우' 등 가상 인간은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고 신작 게임에도 캐릭터로 출연할 예정이다"며 "가상 산업이 될까 안 될까 고민하는 시기는 이제 지났다"고 강조했다.
스마일게이트의 가상인간 '한유아'는 이미 음원 'I Like That'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고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앞서 한유아는 YG케이플러스와 전속 계약을 맺기도 했다.
◇ 얼굴은 기본…관건은 '내면'
관건은 '스토리텔링'이다. 이미 그래픽 수준은 이미 일정 궤도에 올라섰고, 국내 게임사 크래프톤이 선보인 가상인간은 "피부의 솜털과 잔머리까지 구현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다. 다만 지금까지 성공한 가상인간의 사례를 살펴보면 얼굴만큼이나 '내면'도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인간 '릴 미켈라'는 19살의 브라질계 미국인으로 바이섹슈얼(Bisexual)이라는 성소수자 특징을 가졌다. 이성 친구와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모두 인스타그램에 당당하게 공개하며, 각종 사회 문제에 목소리 내기를 좋아한다. 취미는 음악 듣기며 특히 한국의 '블랙핑크' 팬이다.
로지 역시 '자아 정체성'이 확고하다. 그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 '업사이클링' 등 친환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등 사회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단순 '얼굴'뿐만 아니라 가상인간 주요 소비층인 MZ 세대의 '문화'까지 학습해야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IT 업계 관계자는 "캐릭터 제작에 강점을 가진 게임사들이 가상인간 제작에 한발 앞서 있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가상인간은 오랜 기간 대중과 소통해 '팬덤'을 형성해야 하는 만큼 단숨에 폭발적인 성과를 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