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가상자산 정책 다듬을 통계 나왔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01 18:36

수정 2022.03.01 18:36

[이구순의 느린 걸음] 가상자산 정책 다듬을 통계 나왔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55조2000억원이고, 하루 거래액은 11조3000억원으로 코스피의 70% 수준이라는 정부 공식 통계가 나왔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가상자산업사업자 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정부 첫 가상자산산업 공식 통계를 내놨다. 지난 2017년 가상자산 투자 전면금지까지 언급하던 정부가 4년 만에 공식 산업통계를 내놓으면서 가상자산산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셈이다.

통계를 들여다보면 국내에서 가상자산 투자계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1525만명에 달한다. 이 중 고객확인의무를 마쳐 실제 투자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558만명이다. 우리 국민 세 명 중 한 사람은 가상자산 투자를 위해 계정을 만들었고, 가상자산 투자를 위해 거래소에 예치돼 있는 원화예치금은 7조6400억원으로 주식시장 투자자예탁금 65조원의 8분의 1 규모다.
정부가 가상자산 투자를 투기라며 옥죄고 있는 사이에도 가상자산은 이미 자산시장의 주요 투자처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통계에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취약점도 드러났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시가총액은 전체 가상자산 시장의 59%에 달하지만, 국내 대형 4대 거래소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27% 수준에 그친다. 반면 국내 특정 거래소에만 상장된 일명 '김치코인'은 총 403개나 돼 국내 전체 유통 가상자산 중 65%나 차지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글로벌 시장과 분리된 '갈라파고스' 양상을 띠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의 공식 산업통계는 통상 산업정책으로 이어진다. 이번 가상자산 통계가 제기하는 정부의 정책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가상자산은 이미 국민의 일반적 투자수단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더 이상 투명인간 취급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또 그간 정부의 금지정책이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을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시켰으니 대책이 시급하다는 과제도 내놨다. FIU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변동성이 높은 단독 상장 가상자산에 대한 취급률이 높은 만큼 이용자의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그러나 투자자에 대한 당부로 그칠 일이 아니다. 글로벌 주요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이 한국 시장에 상장하고 싶은 매력을 느끼도록 정부가 글로벌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만들어줘야 한다.
또 높은 변동성을 줄일 수 있도록 법인들이 가상자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줘야 한다. 정부가 처음 내놓은 가상자산 통계는 개인들의 단기투자에 의존해 성장한 국내 가상자산산업의 왜곡된 현주소다.
정교하고 글로벌 기준에 맞는 정책을 요구하는 청구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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