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은 전통적으로 북한 문제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강압적 행동에 나서는 상황에서는 민주주의 국제 질서 수호에서 동맹인 한국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美 외교·안보전문가, 한국 러시아 제재 초기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매우 큰 실수 지적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12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인 기본적 원리가 도전을 받을 때는 우리가 함께 맞서 이를 방어한다”며 북한의 도발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위협을 함께 거론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는 1일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한국이 즉각 미국 주도의 국제 제재에 적극 동참하지 않은 것, 즉 제재 초기에 한국 정부 관리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며, 개입하면 한국·러시아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조성하려 했다”며 “그것은 매우 큰 실수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수정이 됐고, 한국 정부와 청와대는 훨씬 좋은 위치에 있다”고 덧붙였다.
에반스 전 수석부차관보는 그러면서 “다음 한국 정부가 비슷한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며 “자유민주주의 국가, 주권국가, 미국의 동맹,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파트너로서 한국은 이 중요한 역사적 시기에 목소리를 높이고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와 청와대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독자 제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국제사회 제재에 참가하는 자체도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다 뒤늦게 28일 러시아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 차단, 이달 1일 러시아 은행과 거래 중지, 국제금융통신망(SWIFT) 배제 등 금융제재를 발표했다.
■美 바이든 행정부 첫 '인도·태평양전략' 발표, 안보와 경제가 합쳐진 ‘경제안보’ 시대 도래...'전략적 모호성' 한계 직면 시사
2월 11일 미국이 외교정책의 중심·비중을 유럽과 중동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옮긴 이후 바이든 행정부 출범 1년여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19쪽 분량의 '인도·태평양전략'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위해 앞으로 어떠한 전략을 가동할지 로드맵을 제시했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역내 '5개 조약동맹(five regional treaty alliances)' 강화라는 중요한 요소가 담겨있어 역내 동맹국들이 다른 국가들보다 인·태전략에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으며, 미국은 인·태전략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동맹국과 그렇지 않은 동맹국을 사실상 차등화하려는 경향성이 있어왔고 이러한 차등화를 분명히 하겠다는 신호를 준 것이기에 한국은 안보와 국익을 위해 이제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을 더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들은 미 바이든 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엔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인·태 경제 프레임워크(economic framework)'도 담겨 있어 경제안보의 중요성, 인·태전략 참여국 간 기술혁신과 공급망 공조 강화와 '안보'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고 융합된 ‘경제안보’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방증해 주고 있어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과는 안보, 중국과는 경제라는 분리된 근시안적 ‘안미경중’ 정책이 한계에 직면하게 됐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도·태평양전략'은 근본적으로 대중국견제라는 포석이 내재되어 있기에 '중국과 공급망을 분리'하겠다는 의미"라며 "인·태전략에 참여하지 않으면 '기술혁신과 안정적인 공급망'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배경에 중국의 경제 보복 등 강압 외교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일련의 다소 직접적인 분석과 비판에 가까운 목소리는 최근 수십년래 상당히 이례적이다.
미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 국제 질서 수호 의지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가운데 인도태평양 지역 현안에서도 한국의 분명한 입장이 기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며, ‘안미경중’ 즉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을 추진했다.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고 밝히기도 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VOA에 미국이 한국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 걸맞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우리가 부각하려는 것은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고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질서, 인권, 법치주의의 원칙을 믿는다면,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이 그러한 가치를 공격했을 때 보복을 감수하고서라도 맞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내 문제에 있어 중국의 인권 유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협적이고 약자를 괴롭히는 행동, 중국의 타이완에 대한 위협 등에 있어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비판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은 중국의 강압적 행동, 최근에는 러시아의 강압적 행동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한국 롯데그룹이 2017년 2월 성주골프장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부지로 내주는 계약을 체결하자 롯데 계열사 중 중국에 가장 많은 점포를 운영 중이던 롯데마트를 표적으로 삼고 보복했다. 또 한국 단체관광 제한, 한국 대중문화 금지 조치도 내렸다고 설명했다.
■차기 한국 정부, 중국 경제적 영향력 축소 노력과 북핵에 대한 미사일 방어 강화 등 정당한 조치 노력해야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차기 한국 정부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넷 연구원은 “보수든 진보든 신임 한국 정부는 중국이 한국에 대해 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며 “따라서 신임 정부는 미국과 중국과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대중 취약성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점이 놀랍다”며 중국과의 무역량을 줄이고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권장하지 않는 등의 조치를 제안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차기 한국 정부가 예상되는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미사일 방어를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세이모어 조정관은 “김정은이 더욱 높은 성능의 미사일을 계속 시험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자국 영토에 미사일 방어 체계를 추가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며 “중국이 이에 대해 매우 불쾌해 할 것을 우리는 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개발을 감안하면 한·미·일 미사일 방어 강화는 정당하며, 한국이 그러한 계획에 동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북한담당 국장을 지낸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차기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섣불리 제재 해제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루지에로 연구원은 “북한은 협상 초기에 혜택을 받은 뒤 약속을 지키지 않고, 원하는 시점까지 상응하는 행동을 지연시키는 것을 우리는 과거에 수없이 봤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은 혜택을 받고, 미국, 한국, 일본과 동맹들 입장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전혀 보지 못하곤 했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정부 관리들이 거듭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 추진을 언급한 데 대해 루지에로 연구원은 ‘유엔 제재 위반’이라며 “차기 정부는 북한이 금지된 프로그램에 쓸 수 있는 경화를 조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에서는 차기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공조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정책에 있어 미국 정부와 엇박자를 내 온 점에 대한 우려때문이다.
미국의 북한 문제에 대한 우선순위는 비핵화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초점을 맞춰 왔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은 “물론 미국은 바이든 정부가 제시한 현안들과 접근법에 열정적인 파트너를 더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나이더 국장은 “동맹 관계에서 한쪽이 자국의 이익을 매우 좁게 규정하고 상대방을 배제할 때 동맹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실상에 근거하지 않고 민족주의적 비전을 가지고 남북한 화해를 추진한다면 관리하기 어려운 도전들이 생기는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가 차기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로부터 한·일 양자간의 이견을 해결하기 위한 상호간의 강력한 노력을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조해 온 가운데, 지난달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에서도 ‘한·미·일 협력 확대’를 구체적인 행동계획 중 하나로 꼽았다. 스나이더 국장은 한·미·일 삼각 조율을 동북아시아의 ‘안보 설계’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차기 한국 정부가 미국과 공동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폭넓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북한의 핵 생산 능력의 검증 가능한 해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의 영구 금지에 상응해 2017년 이래 가해진 대부분의 유엔 대북 제재 해제”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극도로 조심스러운’ 정책은 통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발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의 핵위협, 바짝 다가선 북한의 핵 완성·핵고도화·핵다종화 남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우리의 선택과 대응은
반길주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핵무기에 대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들게 해주었다"며 "지금까지 핵무기는 절대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무기라는 인식적 역학이 가동되었지만 '푸틴이 핵위협 카드'까지 나오면서 이러한 핵무기 공식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을 보유한 국가는 핵 미보유국과의 전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면 핵을 사용할 동기가 촉발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핵을 보유한 중앙집권적 독재자의 비합리적 판단으로 ‘공포의 균형’이 쉽게 무너져 언제든 핵무기 위협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의 대상이 됐다는 해석이다.
반 센터장은 "사실상 핵보유국 북한이 핵 미보유국 한국과 전쟁시 패전 상황에 직면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직면시 김정은이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주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센터장은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한국은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한·미동맹 강화가 가장 확실한 답"이라며 "한·미동맹을 강화해 '확장억제'를 보다 '실효성 있게 진화시키는 조치'를 통해 북한의 핵 공격시 반드시 핵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신호로 ‘공포의 역학’이 유지되게 해야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입장에선 '푸틴의 핵위협 카드'와 '북한의 바짝 다가선 핵 완성을 향한 고도화·다종화는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사안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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