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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韓 러시아 제재, 동참은 했지만 뜸 들였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02 18:34

수정 2022.03.02 18:34

바이든 연설서 '한국' 언급
FDPR 적용 면제가 급선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 정부의 대러시아 제재 동참을 두고 '뒷북' 논란이 불거졌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뒷북' 평가는 "(언론의)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다고 했고, 실제로 이를 진행해 나가는데 왜 한국만 빠졌다고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루 전에도 박 수석은 또 다른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만 러시아 제재 (움직임에서) 빠졌다는 식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박 수석의 주장과 항변은 절반은 맞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일(한국시간·미국시간 1일)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언급하는 가운데 '한국(Korea)'을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유세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며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과 함께 영국, 캐나다,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 심지어 스위스까지 동참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뒷북이냐 아니냐를 떠나 한국의 대러 제재 동참은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늑장을 부린 건 부인하기 힘들다. 발단은 지난달 24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해외 직접생산품 규칙(FDPR)'에서 비롯됐다. 이때 상무부는 새 규칙의 적용을 면제받는 32개국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한국이 빠졌다. FDPR은 제3국이 생산한 제품이라도 미국 기술·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면 러시아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면제를 받으면 반도체 등 하이테크 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할 때 일일이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 정부가 그 역할을 대신하면 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자 미국·EU는 물론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은 잇따라 독자 제재안을 내놨다. 특히 일본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3일 러시아 채권의 일본 내 발행·유통을 금지하는 제재를 직접 발표했다. 이틀 뒤엔 반도체 등 첨단제품 수출 금지, 러시아 금융사 자산동결 조치를 내놨다. 28일 바이든 대통령은 80분 동안 캐나다·프랑스·독일·일본 정상들과 다자 전화회담을 가졌다. 바이든은 기시다 총리에게 따로 감사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동참은 했지만 뜸을 들였다. 외교부는 지난달 28일에야 전략물자 수출규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퇴출에 동참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러시아 은행과 금융거래 중지, 비축유 방출 등의 조치가 잇따라 나왔다. 그러나 핵심 제재로 꼽히는 반도체·정보통신 등 하이테크 제품 규제안은 미정이다.

'뒷북'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FDPR 적용 면제국 명단에 한국이 빨리 추가되면 된다. 방미 길에 오른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3일 미국 상무부 관계자들을 만나 적용 예외를 요청할 계획이다. 뜸을 들이는 바람에 일이 번거롭게 됐다.
한미 동맹은 국가안보의 기초다. 이 기조를 유지하는 한 국제분쟁에서 한국이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번 '뒷북' 논란이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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