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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 칼럼] 누가 푸틴을 두려워하랴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07 18:34

수정 2022.03.07 18:51

[최진숙 칼럼] 누가 푸틴을 두려워하랴
카키색 털모자를 눌러쓴 러시아 병사는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흐느끼고 있다. 땋은 머리에 보라색 물을 들인 우크라이나 여성은 스마트폰 화상으로 누군가를 불러낸다. "나타샤, 들리나요?" 병사의 어머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들을 확인한 어머니 목소리가 떨린다. "잘될 거야, 다 잘될 거야." 지난주 외신이 보도한 러시아 병사의 트위터 영상 장면이다.

이보다 1주일여 전, 그러니까 지난 2월 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영방송을 앞에 두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현대 우크라이나는 혁명 중 레닌과 그 동지들에 의해 얼떨결에 만들어졌다. 러시아의 일부가 아닌 적이 없으며 독립된 나라가 아니었다"는 게 요지다. 이 남다른 인식을 그는 한숨과 탄식까지 섞어가며 전달했다. 서방 언론은 "광기의 60분"이라고 평했다. 다음 날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

병사의 눈물과 푸틴의 광기는 서로 닿아 있다. 엄연한 이웃 주권국을 무참히 짓밟고 전 세계가 등을 돌려도 푸틴의 도발은 기필코 끝을 보려 한다. 이 망상의 길 끝에 길 잃은 앳된 병사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병사의 나라가 그를 압도적으로 지지해온 세월이 20년이 넘는다.

그리스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스탈린 집권기 러시아 전역을 수차례 다녔다. 그 뒤 1956년 쓴 글이 '러시아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나'(한글번역 '러시아 기행')이다. 그의 견문은 지금도 솔깃하다. "러시아인은 모순을 자기 안에서 화해시키는 본래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다. 빛과 어둠이 가득한 영혼을 우위에 두고 창조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우연히 만난 한 저널리스트의 언론관을 들려준다. "진리는 우리가 날마다 현실과 벌이는 투쟁을 통해 달성되는 하나의 균형입니다. 그것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 즉 창조되는 것입니다."

경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 카잔차키스는 어느 시인의 두 줄짜리 시를 떠올린다. "그런 자들의 손톱을 가져다가 버려야 한다. 그러면 세상 어디에도 그보다 더 단단한 손톱은 없으리라."

스탈린 시대의 거짓 선동술을 현실 정치에 가장 잘 활용한 이가 푸틴이다. KGB 장교를 지낸 무명의 지방공무원이 크렘린궁에 들어가 보리스 옐친의 후계자로, 그 후 오늘에 이른 전 과정은 극적이다. 동유럽 분쟁사 권위자인 미국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여기서 위력을 발휘한 것이 푸틴이 창조한 가짜뉴스와 선동이었다고 단언한다('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푸틴식 기만술은 이제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이라는 벽을 만났다. 뜻대로 키이우(키예프)를 함락시키고 젤렌스키 정부를 밀어낸다 해도 푸틴이 승리를 가져갈 수 없는 건 명백하다. 그 대신 엄청난 경제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건 그 국민 몫이다. 러시아는, 세계는 푸틴이 두렵기보다 걱정이 된다.

오래된 권력,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위험을 이 전쟁은 다시 일깨워줬다.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19세기 영국 정치가 존 달버그 액튼경이 한 말이다.
우리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되든 지금의 불안한 제왕적 권력구조만은 뜯어고쳤으면 한다.
공약은 이미 충분히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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