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자본주의 맛 아는 러시아 시민들…북한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뉴스1

입력 2022.03.17 06:30

수정 2022.03.17 06:30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2022.02.24/news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2022.02.24/news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 "러시아인들은 앞으로 해외여행은 물론, 신용카드와 인터넷, 넷플릭스도 사용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대가로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상황을 두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배리 이키즈 경제학 교수가 한 말이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에서는 글로벌 기업 대다수가 보이콧을 선언하며 철수를 감행하고 있다.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향후 있을 불이익과 전쟁은 멈춰야 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러시아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보이콧을 선언한 글로벌 기업만 수십 개에 이른다.

애플과 구글, 인텔 등 IT·반도체 기업은 물론이고 비자와 마스터, 골드만삭스와 같은 금융업, BMW·포드·보잉 등 자동차·항공, 나이키·아디다스·유니클로 등 패션, 맥도날드·코카콜라 등 식품, 넷플릭스·스포티파이·디즈니 등 콘텐츠 기업 등이 사업 철수 결정을 내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마지막 빅맥을 사겠다는 러시아 시민들이 모스크바의 한 맥도날드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섰고 이케아 매장에선 마지막 냄비를 사겠다며 시민들 간 싸움도 벌어지는 모습이 연출됐다.

1990년 3월 맥도날드가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첫 매장을 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전쟁 20일 만에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미 여러 언론 보도에서도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30년 전으로 후퇴할 것이라며 이를 회복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재까지 러시아에 내려진 중대한 제재는 대략 3가지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배제와 외화보유고 동결, 미국의 대러시아 가스·원유 수입 금지다.

이 같은 제재로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극도의 불안전성에 빠졌다. CNBC에 따르면 카르멘 라인하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와 그 동맹인 벨라루스가 디폴트에 거의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이 같은 제재와 현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당장은 버티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주요 인사에 대한 보복 제재를 내놓은 것은 물론, 핵위협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는 여전히 유럽을 상대로 천연가스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최근 유럽이 하나로 뭉쳐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고 느슨한 태도를 취하던 독일도 강경노선으로 선회했지만 언제까지 단일대오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이는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이슈와 논점(미국과 유럽의 대러 정책 결정요인과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천연가스 수입분 중 러시아 비중은 평균 38.1%에 달한다.

세부적으로는 체코와 라트비아는 100%, 독일은 65.2%, 프랑스도 16.8%에 이른다. 최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러시아산 석유·가스 의존도를 끝내야 한다며 강도 높은 입장을 내놨지만 이는 영국과 EU의 입장이 판이하게 달라서다. 영국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는 채 5%가 되지 않는다.

또한 러시아는 경제 사정이 어렵더라도 중국을 고리로 고난을 버티거나 자급자족을 통해 버틸 수 있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도 이란 모델을 거론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지금의 러시아와 유사한 제재에 직면한 이란은 결국 10년째 버티기에 성공하고 있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훨씬 더 큰 나라이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다.

미국 코넬 대학교의 경제 제재 전문가 니콜라스 멀더도 "지금의 경제 제재가 더 말할 나위 없이 가혹하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도 "제재 초반의 치명적 위험이 지나간다면, 이후 얼마간 저성장이나 역성장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했다. 제재 효과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외부의 경제 제재와는 별개로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대 위험 요인은 내부의 저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키즈 경제학 교수는 "전쟁 초기에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여론이 존재했다"며 "그러나 2주 전부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제가 다반사인 러시아 내부에서도 시민들의 반전 시위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으며 국영방송 생방송 중 반전 시위도 일어났다. 한 쇼핑몰에서는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가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며 공중에서 뿌려버리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같은 내부 저항은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상적으로 누리던 해외 콘텐츠와 문화, 수입 패션 등은 한순간에 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채 북한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인데 수십 년간 개방사회를 살아온 러시아 시민들이 이를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결과적으로 푸틴 체제의 균열은 외부로부터의 제재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아이뉴스(inews.co.uk)에 따르면 미 정보국 CIA에서 34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요원 더글라스 런던은 푸틴 대통령은 국가 통제력 상실을 걱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런던은 "경제에 대한 위협이, 또는 거리의 반전 시위 격화가 국내에서의 그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러시아 국민이 '봉기를 해도 잃을 게 없다'고 느끼고 일어선다면 푸틴에게는 심각한 장기적 고려 사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