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이든 광화문이든
국민 중지부터 모으길
국민 중지부터 모으길
3·9 대선 패배 뒤 잠잠하던 더불어민주당은 호재를 만났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17일 "용산 땅은 오욕의 역사가 있는 곳"이라며 "우리나라 대통령이 꼭 청나라 군대, 일본 군대가 주둔했던 곳에 가야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집무실 이전은 국민과 소통을 위한 것인데 국방부 부지는 소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은 본관 근무를 마다하고 비서동으로 내려왔다"며 "대통령이 찾으면 1분 안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이든 용산이든 장단점이 있다. 이럴 땐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 대선 공약집 329쪽을 보라. 윤 당선인은 "국민 곁에서, 국민과 늘 소통하며 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관저는 "대통령실과 공간적 분리 및 이전"을 약속했다. 불통 이미지가 강한 청와대에서 나오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장소를 둘러싼 혼선으로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새 집무실 장소를 지금 당장 정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헌법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제66조)고 규정한다. 그만큼 무거운 자리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집무실을 서둘러 정할 일이 아니다.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일단은 청와대에 들어간 뒤 시간을 두고 최적지를 선택하기 바란다. 다만 그 전에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절차는 필수다.
문재인 대통령 사례도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만큼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의욕이 컸다. 5년 전 취임사에서도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2019년 1월 공약을 파기했다.
청와대 이전에 따른 경호, 보안, 비용상의 문제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더해 당시 유홍준 광화문시대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은 '제일 큰 걸림돌'로 "(새 집무실이) 현재 대통령만 살다 가는 집이 아니다"라는 점을 꼽았다. 이번에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을 경우 그 다음 대통령은 또 다른 데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나설 수 있다. 이래선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의 중지를 모으는 과정을 거쳐 결정하는 게 옳다. 윤 당선인이 집무실 조급증을 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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