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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시 중인 작품 반환 요구 왜 이러는 것일까?[기고]

뉴시스

입력 2022.03.18 17:00

수정 2022.03.18 17:00

기사내용 요약
정준모(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전쟁중 일방적 요구는 반출 될수 없는 상황 발생 때문
전시계약 당시 '정부 레터' 주고 받아야
문화부 장관 확인 서한으로 보장 해줘야
미술계 "민간 전시도 국가 보증제도 도입" 주장

[서울=뉴시스]카지미르 말레비치,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 1913 Ⓒ Krasnoyarsk Art Museum named after V.I.Surikov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카지미르 말레비치,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 1913 Ⓒ Krasnoyarsk Art Museum named after V.I.Surikov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러시아에서 현재 세종문화화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전시 작품을 조기 반환하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다. 러시아의 유명한 인상파 콜렉션인 이반과 미하일 모로조프가 소장했던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 “모로조프 컬렉션: 현대 미술의 아이콘”(The Morozov Collection: Icons of Modern Art)가 지난해 9월 22일부터 올 2얼 22일까지 열렸는데 일단 4월 3일까지 연장전시를 하기로 결정해 작품반출이 미루어지고 있다.

사실 전시가 끝나도 파리-러시아간 항공편 때문에 반환이 어려울 것이란 말들이 돌았지만 프랑스 측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방법을 찾아 반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미술관 2곳에도 자국 미술품의 조기 반환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각각 23점과 2점을 러시아 미술관으로부터 빌린 갈레리에 디탈리아 미술관과 팔라조 레알레 미술관은 당초 6월 초까지 전시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페테스부르그의 에르미타주는 런던 국립미술관에서 4월 9일부터 열릴 예정인 라파엘(Raphael)전에 대여해주기로 했던 ‘성 가족’(The Holy Family,1506-07)의 대여를 취소했다.
기본적으로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 소장미술품을 전쟁 중에 일정 대여하지 않으며, 나가 있는 작품은 모두 거두어 들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러시아가 왜 이런 요구를 해 왔는가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하면서 우리가 러시아 제제에 동참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하지만 이것은 반은 맞고 만은 틀리다.

러시아 뿐 만 아니라 외국의 어느 미술관 예를 들면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에서 작품을 대여 해 올 경우에도 꼭 문서로 요구하는 것이 있다. 전시를 위해 한국에 작품에 체류하고 있을 때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이나 어떤 이유와 목적에 따라 작품을 압류하려는 소송이 발생할 시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 명의로 소송이 제기되어도 정부가 책임지고 작품을 대여국에 반송하겠다는 일종의 치외법권을 인정해 국제법에 따라 대여작품의 인전하고 확실한 반환을 보장하는 문화부 또는 문화 관련 부서 장관의 확인 서한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꼭 들어간다.

“I am happy to assure you that the aforementioned works, which are the property of the OOOO Museum, will be regarded an integral par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national cultural heritage and protected from seizure in accordance with the international law. No further documentation is required to confer protection.”

작품을 주고받으면서 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일까. 선의의 문화교류에 말이다. 이는 국제법상 전쟁을 일으켜 패하거나 또는 전쟁을 일으킨 원인국으로서 상대국에 배상을 해야 할 경우 국제법 또는 전범 재판의 결과에 따라 작품이 우선 압류되어 반출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대여해 온 작품 중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약탈당한 작품이, 예를 들면 소련이 독일에서 철군하면서 가지고 가서 그 작품을 약탈당한 이의 당사자 또는 가족이나 유족 친족들이 반환소송을 제기해 소송이 종료될 때까지 작품이 반출되지 못하고 예를 들면 한국법원에 압류되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사실 외국에서는 이런 사건이 흔치는 않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최소한 해당 국가의 문화부 또는 문화 관련 장관이 서명한 문서가 필요하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는 국립미술관 박물관 전시에는 문화부 장관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를 발급하지만 이와 달리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이 기획하는 외국에서 작품을 대여해 오는 중요한 전시는 이런 문서를 발급해 주지 않는다. 장관이, 정부가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이유로 서명을 해주지 않는다. 미술계에서 ‘국가 보증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런 제도가 없어 작품대여가 어렵거나 무산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이런 문서발급을 정부가 책임지기 싫어 못 해준다면 국민들이 세금을 낼 이유가 있을까.

이전 전시같은 경우도 전시계약 당시 이런 부분을 챙겨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 작품들은 귀국의 필수적인 문화재로서 압류로 부터 보호 받을 것"이라는 레터를 주고 받았다면 전시 계약기간 동안 못 돌려주겠다고 협상을 해 볼 여지가 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뽀족한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이런 전시를 준비하면서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다면 글쎄. 사후 약방문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러시아가 요구하는 기한 내에 보내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우리나라는 러시아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 작품을 대여해 오는데, 장애가 될 것이다. 선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미술품에 있어서는 빌려줄 것 보다 빌려올 것이 훨씬 많은 후진국인 우리나라 실정상 이번 일이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나라 백성들도 제대로 된 전시, 작품을 좀 보자. 선진국이라고 말만 하지 말고 말이다.
새 정부에서도 이런 부분을 챙겨주었으면 한다.

▲글:정준모(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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