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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표기 부실… 시각장애인에겐 먹고 마시는 것도 모험

식음료·의약품 점자 정보 부족
제품명 없이 탄산·음료·맥주 표기
유통기한 알 수 없어 불편 호소
원종필 국립장애인도서관 관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점자를 읽으며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원종필 국립장애인도서관 관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점자를 읽으며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식료품과 의약품 내 표기된 점자 정보가 부족해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약품의 경우 지난해 6월 약사법 개정에 따라 오는 2024년부터 일부 의약품에 한해 점자 표기가 의무화될 예정이나, 이를 위한 명확한 재정적 지원 규정이 없어 추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 "제품 이름 알지 못해, 랜덤 뽑기"

21일 시민사회에 따르면 식료품 내 점자 미표기로 시각장애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식품산업협회 회원사 161곳 중 점자 표시를 제공한 식품 업체는 단 7곳에 그쳤다.

식료품에 점자가 표기됐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역시 손에 꼽힌다. 최근 국민청원에는 '시각장애인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지켜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서 청원인 A씨는 "유제품의 유통기한, 식료품의 제품명 등에서 '점자 표기 오류 및 미표기'는 시각장애인을 정보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음료의 경우 정확한 제품명이 점자로 표시되어 있지 않고 그저 탄산, 음료, 맥주 정도로만 표기되어 있고, 신선도가 중요한 유제품에는 유통기한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시각장애인들의 지적이다.

전맹 시각장애인 이동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간사는 "시각장애인에게 이온음료와 알로에 주스는 같은 제품이다. 점자로 '음료'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제품 이름을 알 지 못한 채 매일 '랜덤 뽑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생명권에 대한 위협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중증 시각장애인인 김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선임연구원 역시 "시각장애인에게는 식품 구매에 대한 결정권이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식료품 내 점자 표기에 대한 현행법 내 의무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식품 등에 점자 및 음성·수어영상변환용 코드 등을 표시토록 하는 '식품 등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은 "정부 측과 협의체를 구성해 식료품 내 점자 표기를 준비하고 있지만 갈 길이 먼 상황"이라며 "점자 표기 의무화 대상 범위를 두고 논의 중에 있다"고 전했다.

■ '반 쪽 짜리' 의약품 점자 표기

의약품의 경우, 식품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역시 '반 쪽 짜리' 대안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크다. 약사법 개정안은 지난해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2024년 7월부터 의약품 점자 표기 의무화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점자 표기 규격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는 데다 적용 대상이 '안전상비의약품 및 식약처장이 지정한 품목'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이동진 간사는 "의약품에 점자가 적혀 있어도 어디에 점자가 있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하게 표기된 경우가 많다"며 "법으로 점자의 높이·간격 등에 대한 규정을 포함하지 않는 한 실효성 있는 정책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의약품 점자 표기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연주 정책팀장은 "점자 표기 용지를 제작해야 하는 제약사들의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건강증진기금과 같은 공적기금 등에서 제약사를 지원하는 안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