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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대통령의 ‘태생적 고립감’과 소통

조은효 도쿄특파원
[재팬 톡] 대통령의 ‘태생적 고립감’과 소통
지난해 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귀신 출몰설'이 나도는 총리 공저(관사)로 이사해 이틀 잠을 자고 나오자, 일본 기자들이 "귀신을 봤느냐"며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일본 총리 공저는 집무공간인 총리 관저에서 도보 2~3분 거리에 있어 한밤중에도 위기관리 대응이 가능하다. 문제의 귀신 출몰설은 1932년 5·15 쿠데타 사건으로 당시 현직 총리인 이누카이 쓰요시가 살해된 이후다. '꺼림칙한 장소'라는 이미지가 생기며 "공저에 들어가 살면 정권이 단명한다"는 속설이 보태졌다. 이 때문인지 아베·스가 두 정권은 9년간 이곳을 비워뒀었다.

흥미로운 것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다. 끝끝내 공저 입주를 거부했지만 1년 단명 정권으로 끝난 것이다. 속설은 빗나갔다. 그런데 스가 전 총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귀신이 아닌, 세상으로부터의 '단절', '고립감'이었다고 한다.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그는 공저에 들어가면 자민당 파벌들의 공기를 읽을 수 없다며, 이들과 소통할 목적으로 기숙사 형태의 좁은 국회의원 숙소에서 기거했다.

공저에서 용감하게 지내고 있는 기시다 총리도 최근 주위에 '고립감'을 언급했다고 한다. 어쩌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고립감일지 모른다. 저녁이면 도쿄 도심의 식당에서 정치인, 경제인 할 것 없이 격의 없이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데도 말이다. 발빠른 기자들의 취재로 총리의 동선은 다음날이면 식당의 상호명, 만난 상대방의 이름과 직책까지 모두 공개된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청와대 비서실장이 기업인 누구를 만났다고 하면, 그 자체가 기밀이며 뉴스거리가 되는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점을 뜻한다. 누군가 대통령에게 다가설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곧 권력이다. 이는 역으로 한국 대통령들의 고립감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권의 한 핵심인사는 "문 대통령과 후보 시절 소통했던 휴대폰 번호로 이런저런 의견을 수차례 문자 메시지로 보내봤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면서 "아무래도 비서가 그 휴대폰을 관리하고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호 수준도 의원내각제의 총리와는 급이 다르다. 남북한 대치상황에서 대통령의 안위는 곧 국가안보다. 대통령의 동선은 곧 국가기밀이다. "퇴근길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싶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소박한 꿈'은 한국의 대통령제 구조하에서는 '이벤트성'이 아니고선 애당초 성립될 수 없는 얘기였던 것이다. 공간을 바꾼다 한들 대통령이 가질 '태생적 고립감'은 한국 대통령제의 특성상,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개선의 여지는 있다. 대통령이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없다면 청와대든 국방부든 그 안으로 쉴 새 없이 사람들을 불러들여 격의없이 만나 소통하라는 것이다. 기자들이 지겨울 정도로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에게 충실히 설명을 하라는 것이다. 고립감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들이 있다는 것이다. 비밀주의,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을 만나 의견을 전달하는 게 쉬쉬해야 할 일이거나, 특혜로 여겨져선 안 된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적어도 청와대든, 국방부든 그 어디에서라도 대통령을 향한 접근 통로를 열어놓고, 다른 의견과 가치에 대해 유연하게 사고 회로를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을 하겠다면,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시다 총리는 지난 2월부터 3월 22일 현재까지 약 50일간 약식 회견을 포함, 총 27번의 기자회견(정식회견 4번)을 했다. 이틀에 한 번 꼴이다.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이보단 적어도, 한국 기준으보면 꽤나 빈번하다. 한국은 신년, 취임 기념, 연간 2번뿐이다.
사실상 연례적 수준의 행사다. 소통을 표방한 대통령치고는 심했다.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