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효 도쿄특파원
흥미로운 것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다. 끝끝내 공저 입주를 거부했지만 1년 단명 정권으로 끝난 것이다. 속설은 빗나갔다. 그런데 스가 전 총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귀신이 아닌, 세상으로부터의 '단절', '고립감'이었다고 한다.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그는 공저에 들어가면 자민당 파벌들의 공기를 읽을 수 없다며, 이들과 소통할 목적으로 기숙사 형태의 좁은 국회의원 숙소에서 기거했다.
공저에서 용감하게 지내고 있는 기시다 총리도 최근 주위에 '고립감'을 언급했다고 한다. 어쩌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고립감일지 모른다. 저녁이면 도쿄 도심의 식당에서 정치인, 경제인 할 것 없이 격의 없이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데도 말이다. 발빠른 기자들의 취재로 총리의 동선은 다음날이면 식당의 상호명, 만난 상대방의 이름과 직책까지 모두 공개된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청와대 비서실장이 기업인 누구를 만났다고 하면, 그 자체가 기밀이며 뉴스거리가 되는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점을 뜻한다. 누군가 대통령에게 다가설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곧 권력이다. 이는 역으로 한국 대통령들의 고립감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권의 한 핵심인사는 "문 대통령과 후보 시절 소통했던 휴대폰 번호로 이런저런 의견을 수차례 문자 메시지로 보내봤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면서 "아무래도 비서가 그 휴대폰을 관리하고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호 수준도 의원내각제의 총리와는 급이 다르다. 남북한 대치상황에서 대통령의 안위는 곧 국가안보다. 대통령의 동선은 곧 국가기밀이다. "퇴근길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싶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소박한 꿈'은 한국의 대통령제 구조하에서는 '이벤트성'이 아니고선 애당초 성립될 수 없는 얘기였던 것이다. 공간을 바꾼다 한들 대통령이 가질 '태생적 고립감'은 한국 대통령제의 특성상,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개선의 여지는 있다. 대통령이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없다면 청와대든 국방부든 그 안으로 쉴 새 없이 사람들을 불러들여 격의없이 만나 소통하라는 것이다. 기자들이 지겨울 정도로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에게 충실히 설명을 하라는 것이다. 고립감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들이 있다는 것이다. 비밀주의,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을 만나 의견을 전달하는 게 쉬쉬해야 할 일이거나, 특혜로 여겨져선 안 된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적어도 청와대든, 국방부든 그 어디에서라도 대통령을 향한 접근 통로를 열어놓고, 다른 의견과 가치에 대해 유연하게 사고 회로를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을 하겠다면,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시다 총리는 지난 2월부터 3월 22일 현재까지 약 50일간 약식 회견을 포함, 총 27번의 기자회견(정식회견 4번)을 했다. 이틀에 한 번 꼴이다.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이보단 적어도, 한국 기준으보면 꽤나 빈번하다. 한국은 신년, 취임 기념, 연간 2번뿐이다. 사실상 연례적 수준의 행사다. 소통을 표방한 대통령치고는 심했다.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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