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 달째 지속되고 있다. 그간 전장의 긴장도 팽팽했지만, 지정학적 지형 재편을 꿈꾸는 러시아와 서방 세계 간 간극도 커졌다. 그리고 '신냉전'에 비유되는 이 긴장은 이제 경제와 식량 위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간 전쟁터에서 세계가 경험한 가장 큰 놀라움으로는 세계 2위의 군사대국으로 알려진 러시아가, 20위권 밖에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군의 강한 저항 의지도 있지만, 서방 국가의 무기 등 전쟁 물자 지원도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NBC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 군사전문가이자 영국 싱크탱크 채트험 하우스 선임 펠로우인 키어 자일스는 "주된 의문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이 단지 멈추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눈에 띄게 실패할 만큼 충분히 오래 버틸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서방의 지원이 우크라이나에 흡수되는 속도와, 우크라이나 국민의 끈질김, 러시아가 분쟁을 끝내게 만들 공포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이 어느 한 쪽의 승리로 귀결되기보단, 양측 모두 많은 희생을 치르는 소모전으로 치달을 것이란 게 서방 군사정보당국과 각국 안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소모전으로 장기화하는 전쟁…인명피해 가중
그러는 사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삶만 피폐해지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4400만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000만 명이 집을 떠나 피란 중이다. 이 중 350만여 명은 폴란드와 몰도바 등 해외에서, 650만여 명은 국내 다른 도시 사이에서 떠돌고 있다.
러시아의 집중 포격과 폭격을 받은 마리우폴은 처참하다. 유엔인권사무소는 공식적인 민간인 사상자 수가 2500여 명이지만, 실제 수치는 이의 곱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마리우폴 내에서 10만여 명이 오도가도 못한 채 음식과 물, 의약품도 없는 비인간적 상황에서 포격을 견뎌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러시아도 병력의 최대 20%를 상실한 것으로 추산된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지난 4주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군 병사 7000~1만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수치는 부상자와 포로, 실종자를 모두 합하면 3만~4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이토록 전황이 지지부진한 배경엔 초기 러시아의 오판과 계획 실패가 주효하다는 데 서방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주요 도시를 신속하게 점령하고 젤렌스키 정부를 제거, 괴뢰정부를 수립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계획이 실패하자 푸틴은 민간인 및 민간·기간 시설에 대한 무차별 포격과 폭격으로 항복을 유도하는 '플랜n'(미국 정보당국은 플랜B, 영국 정보당국은 플랜C로 칭함)에 돌입했다는 게 서방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최대 물동항인 남부 오데사에 거주하는 싱크탱크 프리즘 한나 셸레스트 대표는 "러시아의 잔혹성은 정말 놀라울 정도"라며 "이건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고의적"이라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물론 러시아 당국은 늘 공식적으로는 '전쟁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해 왔다. 다만 이를 두고 내부적으로는 다소 이견이 나오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평화협상도 지지부진…점점 낮아지는 타결 기대감
개전 나흘 만에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단 간 평화회담도 3주가 넘어가고 있지만, 타결 기대는 시간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러시아는 요구를 굽히지 않고, 우크라이나도 원칙이 확고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러시아는 크름반도의 귀속과 돈바스 독립 인정을 요구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영토 보전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요구하면서 비무장까지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중립국 협상을 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주변국의 안전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신뢰할 수 있는 국가에는 인근 터키와 이스라엘 같은 국가도 포함되겠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이 경우 러시아는 나토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입장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서방 당국에서는 이번 협상에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나 러시아 고위급 인사는 참여하지 않는 점을 들어 푸틴 대통령이 협상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습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결국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와 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했지만, 서방이 협상에 나설 지도 미지수다.
◇바이든·푸틴·젤렌스키 리더십 운명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작년 1월 취임 직후부터 중국과의 세력 대결에 집중하기 위해 러시아와는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듯 보였다. 이란 핵협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으로 코로나19 팬데믹과 아프가니스탄 철군 혼란에 이어 또 다른 악재를 만났다. 국내 리더십과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리더십 측면 모두에서 시험대에 놓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불거진 작년 말부터 영국과 유럽연합(EU), 캐나다, 일본, 호주 등 동맹 국가들과의 결속은 단단해지는 모습이다. 이들 국가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EU·G7 정상회의를 연달아 개최하고 대러 추가 제재를 발표할 예정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전쟁 기간 지지율이 90% 급등하고, 국내를 넘어 유럽과 세계 전체에서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거의 매일 소셜미디어에 영상 연설을 올려 군과 국민의 자긍심과 항전 의지를 고취하고, 대러 선전 메시지도 전하면서, 수도 키이우에서의 건재를 관시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독일을 시작으로, 이스라엘과 일본, 스웨덴 등 여러 나라 의회에서 화상 연설로 도움과 지지도 호소하고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이런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보와 관련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은 적이 없지만, 전쟁 기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해외로 대피할 것이란 초반 예측과는 달리 이처럼 결연하게 맞서는 모습 자체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내 감정은 양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서방 언론은 연일 군사 쿠데타와 시민 봉기 가능성을 조명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서방 정보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푸틴 정부는 러시아 독립 뉴스 매체를 모두 폐쇄하고 반전 시위대를 체포했으며, '전쟁'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으로 표현하지 않는 기자는 외신이라도 징역 15년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NBC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러시아내 식료품점의 생필품 사재기 영상의 진위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푸틴의 강압으로도 러시아 루블화의 폭락과 시민의 혼란을 막을 수는 없다고 관측했다. 해외에 보유한 달러와 유로 등 외화 자산이 동결되고 국제 거래 자체가 막힌 러시아 경제가 이 같은 서방의 제재를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느냐도 이번 전쟁의 쓰라린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다만 러시아 관영 언론 외에도 '승리를 위해' 라는 의미의 'Z'마크로 전승을 기원하는 시민들이 러시아 내에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체첸을 잔혹하게 진압한 공적으로 총리에 오른 뒤 대통령이 되고, 우크라이나 크름(크림반도) 장악 후 지지율을 높였던 푸틴의 러시아내 영향력이 이번 전쟁 이후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는 선동적인 러 관영 언론 보도와 서방 편향적인 외신 보도만으로는 예측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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