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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은 총재직을 놓고 정치 공방은 곤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25 15:27

수정 2022.03.25 15:27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사진=fnDB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사진=fnDB


[파이낸셜뉴스] 신구 권력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은행 총재 자리까지 정치 공방에 휘말릴 조짐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차기 한은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현 이주열 총재는 3월말 퇴임한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서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즉각 "협의한 것도, 추천한 것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24일 윤 당선인은 한은 총재 지명에 대해 "인사가 급한 것도 아닌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양측은 사전협의를 했느니 안 했느니 진실 공방을 벌였다.

 
한은 총재가 정치 공방에 휩싸인 건 이례적이다.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한다. 금통위에 정치색이 묻으면 올바른 금리 정책을 펼 수 없다. 정치인들은 늘 금리 인하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해 8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그 뒤에도 두 번 더 올려 현재 기준금리는 1.25%에 달한다. 코로나 경제위기 속에서 금리를 올리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다. 자칫 경기 회복세를 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은은 물가안정을 목표로 선제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이는 한은법이 한은의 중립성을 보장(3조)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은 총재는 바로 그 중립성을 상징하고 실행하는 자리다.

 
사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한은의 중립성을 존중했다. 이주열 총재는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4년 뒤 이 총재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연임을 선택했다. 한은 역사상 세번째 연임이었다. 1998년 전에는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겸하지 않았다. 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첫 연임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지난 5년 간 문 대통령이 한은이 편 금리 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문 대통령이 임기말, 그것도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된 뒤에 차기 한은 총재를 지명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비록 "당선인 측 의견을 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아예 결정권 자체를 당선인 측에 넘겼더라면 모양새가 더 좋았을 것이다.

 
이창용 후보의 자질은 충분하다. 이 후보만큼 나라 안팎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이코노미스트는 찾기 힘들다. 경제학 교수(서울대) 출신인 그는 금융위원회를 거쳐 아시아개발은행(ADB), IMF에서 풍부한 경력을 쌓았다. 이주열 총재는 23일 송별간담회에서 "이창용 국장은 학식, 정책 운영 경험, 국제 네트워크 등 여러 면에서 출중한 분"이라며 "제가 조언을 드릴 거는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제 이창용 후보 지명은 돌이킬 수 없다.
이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어느 쪽이든 더이상 한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행여 청문회가 한은 총재 인사권을 둘러싼 신구 권력 간 공방으로 얼룩지는 일만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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