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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ARM 인수 검토, SK의 도전에 주목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31 18:45

수정 2022.03.31 18:45

반도체 설계의 슈퍼갑
원천기술 확보할 기회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3월31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SK하이닉스 출범 10주년 행사에서 회사의 미래 성장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제공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3월31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SK하이닉스 출범 10주년 행사에서 회사의 미래 성장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제공
SK하이닉스가 세계적 반도체 설계전문기업인 ARM 인수를 검토 중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3월 30일 주주총회가 끝난 뒤 "ARM 인수합병(M&A)을 위해 다른 기업들과 공동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전날 열린 SK스퀘어 주총에서도 ARM 인수 의지를 보였다.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서 새출발을 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 메모리반도체 기업으로 올라섰다. 열세이던 시스템반도체 시장 공략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어 과감한 M&A를 통해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겨냥하고 있다.

박 부회장이 인수 대상으로 지목한 ARM은 손정의가 대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 자회사로, 영국에 본사가 있다. 반도체 회사지만 칩은 전혀 만들지 않고 회로 설계만으로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기업이다. 설계도를 반도체 회사에 팔아 지식재산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금을 받는다. 이 지식재산 수입이 ARM의 전체 수익이다. 칩이 전자제품 등에 사용될 때마다 장당 가격을 매겨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삼성전자나 애플 등이 개발·판매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핵심기술 상당수가 ARM 소유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90% 이상이 ARM의 회로기술을 쓴다. 태블릿 설계분야 점유율도 85%에 달한다.

ARM이 가진 원천기술의 가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손정의는 지난 2016년 이 회사를 320억달러(약 37조원)에 샀다. 당시 ARM의 연간 판매액은 15억달러에 불과했다. 세계 반도체시장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M&A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기업들에 원천기술은 아킬레스건이다. 탁월한 제품 생산능력에도 불구하고 원천기술 확보는 쉽지 않았다. 이정도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저서 '축적의 시간'에서 "우리 기업과 산업이 어려움을 겪는 본질은 개념 설계역량이 부족한 데 있다"며 "꾸준한 시행착오를 통해 이를 축적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기술혁신은 따지고 보면 새로운 개념을 설계하는 일이다.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설계역량은 처음 쌓기는 힘들지만, 한번 쌓으면 갈수록 강해지는 게 원리다. 반도체 시장의 또 다른 강자인 네덜란드 NXP가 계속 몸값을 높이는 것도 차량용 반도체 핵심기술 덕분이다. 우리 스스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게 최선이지만, 그런 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차선책으로 자주 활용된다.

SK하이닉스가 ARM을 품게 되면 반도체 설계부터 파운드리, 제품 생산까지 일관 라인업이 완성된다. 박정호 부회장은 3월 31일 출범 10주년 행사장에서 "국경과 산업의 벽을 넘어 경쟁력 있는 파트너라면 누구와도 힘을 합쳐 성장동력을 발굴할 것"이라고 했다.
신기술 각축장인 반도체 시장은 지금 급변기를 맞고 있다.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 성장전략을 약속했다.
글로벌 패권을 향한 우리 기업들의 과감한 도전을 새 정부가 적극 뒷받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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