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이 곧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명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둘러싼 지리적, 역사적, 민속학적, 유전적 특성과 흔적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오랜 생성과 소멸 과정을 거친 적자생존의 산물이다. 우리말 어휘 중 가장 숫자가 많고 사용 빈도가 높은 것도 지명이다.
조선이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면서 주산(主山)으로 삼은 산이 있다. 이 산 아래 궁궐과 왕의 침소를 남쪽으로 앉혔다. 이 산의 명실상부한 본명은 백악산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 열에 예닐곱은 북악산이나 청와대 뒷산, 북한산이라고 부르는 게 현실이다. 원래 북한산은 산 이름이 아니라 한양의 옛이름인 한산 이북을 이르는 지역명이다.
백악이라는 고유의 산 이름이 잊혀지고 있다. 꼭대기에 진국백(鎭國伯)이라는 여신을 모신 백악신사(白岳神社)가 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백두산이나 태백산이 그렇듯 밝음, 으뜸이라는 뜻을 품었다. 다만 풍수에서 이 산의 수호신이 북 현무(北 玄武)이고, 사람들에게 친숙한 남산의 북쪽에 자리 잡은 북산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여기에다 북대문(숙정문)과 북악스카이웨이, 북악터널의 존재도 북악이라는 지명의 사용 빈도를 높였다.
'청와대 뒤편 북악산 일대가 6일부터 전면개방된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이 산의 이름을 백악산이 아닌 북악산이라고 지칭한 것은 실로 유감이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백악신사가 있던 산마루에 '백악산 342m'라고 새긴 돌비석을 세웠다. 또 2009년 백악산을 국가지정 명승 제67호에 올렸다. 이왕 산 이름을 찾아줬으면 제 이름으로 불러야 하지 않겠나.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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