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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파주시민 모두가 자살예방 도우미, '화제'

강근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13 11:47

수정 2022.04.13 11:47

최종환 파주시장. 사진제공=파주시
최종환 파주시장. 사진제공=파주시

【파이낸셜뉴스 파주=강근주 기자】 작년 7월 파주시 월롱면 한 약국에 취기가 오른 70대 노인이 수면제를 사러 왔다. 죽기 위해서다. 약사는 노인에게 음료를 주고 옆에 앉아 사연을 물었다. 노인은 칠순이 넘도록 결혼을 못해 자식도 없고, 삶의 낙이 없다고 했다. 약사는 즉시 파주시자살예방센터에 연락했고, 위기지원팀과 경찰이 출동해 노인의 죽음을 막아냈다.

파주사회 곳곳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에 이어 코로나19까지 장기화되자, 파주시민은 우울감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경우를 막고자 애쓰고 있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유관기관, 행정기관, 학교, 정신의료기관, 자영업자 등이 자살예방사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13일 “파주는 타 지역에 비해 노인인구 비중이 높은데다 신도시 조성으로 신규 인구도 급증하고 있다”며 “연이은 재난상황에다 급격한 변화로 인해 시민이 힘들어 하지 않도록 촘촘한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기관-부동산-숙박업소 자살 게이트키퍼 맹활약

70대 노인 자살을 예방한 월롱우리약국은 ‘우리동네 마음건강 약국 52호점’이다. 마음건강 약국은 약국을 방문하는 주민 중 자살이 우려되는 경우 유관기관에 의뢰해 적극 생명보호에 나서겠다고 약속한 곳이다.

2018년 약국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현재 106곳이 마음건강 약국으로 지정됐다. 이는 전체 약국 159곳 중 66.7% 비중으로, 약사들은 매년 게이트키퍼 교육을 받는 등 적극 참여하고 있다.

마음건강사업은 2017년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시작됐으며, 현재는 동네의원(43개)과 한의원(23개)이 함께 활동하는 등 요양기관만 172개곳이 동참하고 있다.

파주시는 자살 원인이 ‘정신건강’ 문제이나 정작 의료기관에서 상담 및 치료를 받는 경우가 극히 드문 만큼, 접근성이 좋은 요양기관이 자살예방을 위한 게이트키퍼가 돼야 한다고 봤다. 실제로 일선 약국과 의원은 단골고객이 형성돼 주민과 친밀도가 높고 전문가로서 신뢰도가 높아 적기에 자살 위험군에 대한 조치가 가능하다.

나아가 작년부터 부동산-숙박업소도 게이트키퍼로 양성하고 있다. 자살 사망이 주로 ‘자택’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자살빈발지역의 부동산 10개를 ‘마음건강 부동산’, 숙박업소 6개를 ‘마음건강 숙박업소’로 지정했다. 이들 업소는 자살 고위험군을 조기 발견하고,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이 협업하고 있다.

파주시 생명사랑 실천가게.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생명사랑 실천가게.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우리동네 마음건강 약국.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우리동네 마음건강 약국.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마음건강 부동산 내부.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마음건강 부동산 내부.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농약 안전보관함 내부.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농약 안전보관함 내부.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설 자살예방센터.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설 자살예방센터. 사진제공=파주시

◇찾아간다, 아픈 마음 살피러…‘파주마음동행’

도농복합도시 특성을 감안해 파주시는 노인을 위한 맞춤형 찾아가는 자살예방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찾아가는 정신건강 서비스인 ‘파마동(파주마음동행) 마음안심 버스’를 작년부터 운행하고 있다. 파마동 마음안심 버스는 주 2회 자살빈발지역을 순회하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전문 상담을 진행한다.

올해부터는 택시업계와 협업해 파마동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자살을 시도했다 구조된 시민이 응급실에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하는 파마동 택시사업을 실시한다. 또 다른 위험을 방지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과 택시회사, 센터, 보건소 등이 정보를 공유해 사후관리에 나설 예정이다.

자살시도자가 사례관리 등 지속 관리를 받으면 자살위험도가 감소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살시도자가 단 1회 사후관리를 받았을 때 자살위험도는 14.4%인데 비해 4회만 사례관리를 해도 그 위험도는 6.5%로 급감했다.

◇번개탄-농약 관리 철저…자조모임 활성화

파주에는 자살을 시도하고자 번개탄을 구입하려던 단골고객을 구한 사례도 있다. 파주 곳곳에 ‘생명사랑 실천가게’로 지정된 번개탄 판매업 128곳은 주민의 위급신호를 감지해 생명구조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파주시는 생명사랑 실천가게 지정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에 농약안전보관함 606개를 설치해 관리 중이다. 자살 수단 중 하나인 번개탄이나 농약 관리를 철저히 시행해 행여나 모를 자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소방서 구급팀 및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와 협약을 통해 음독자살을 시도하는 사례를 의뢰하는 체계를 구축한 음독자살예방사업도 펼치고 있다. 아울러 자살을 시도한 경우, 자살 위험이 높은 우울증 노인,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까지 지속적인 사례관리를 하고 있다. 사례별로 개별 및 집단 프로그램을 구성해 매달 자조모임을 하거나, 안부전화를 하는 등 자살 재시도율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살은 작은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파주시는 생명존중문화를 확산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자 시민 참여도 독려하고 있다. 2017년부터 해마다 ‘파주시 생명사랑 자살예방포럼’을 열어 연도별 자살 현황 및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작년부터 도서관에 ‘괜찮니 ZONE’을 설치해 생명존중 관련 서적을 공유하고, 우편함을 만들어 시민 누구나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뒀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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