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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 칼럼] 갈림길에 선 마크롱혁명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13 18:43

수정 2022.04.13 19:00

[최진숙 칼럼] 갈림길에 선 마크롱혁명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두 전직 프랑스 대통령이 없었다면 지금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샤를 드골 대통령이 문을 연 프랑스 제5공화국 역대 지도자 중 가장 인기 없었던 이가 사르코지, 올랑드인 건 분명하다. 이들 10년 치세가 부른 정치혐오, 대선 코앞에서 터진 쟁쟁한 거물들의 극적인 스캔들, 그 속에서 빛나는 정치샛별 마크롱이 기회를 잡았다. 5년 전 대선 때다.

무명에 가까운 39세 정치신인의 엘리제궁 입성은 대선을 불과 5개월 앞두고 나온 그의 책 '마크롱 혁명' 제목처럼 혁명적이었다. 파리 북쪽 아미앵 의사 부부는 구약성경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구세주 이름으로 장남의 이름을 지었다.
24년 나이차를 뛰어넘은 기적 같은 연애사는 대통령 불륜 사생활에 지친 국민에게 더없이 신선했다.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에서 일약 경제장관으로, 다시 관직을 걷어차고 당(앙 마르슈)을 만든 지 1년여 만에 권력 꼭대기에 올랐다. 프랑스 정치사학자 장 가리그는 그를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라고 했다.

'마크롱 혁명'에서 마크롱의 기개는 하늘을 찌른다. "지난 30년간 좌파와 우파는 성장 하락세를 공공부채로 메웠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프랑스가 아니었다"고 부르짖었다. 철밥통 공공노조, 엉터리 학력평가, 복잡한 연금체계, 과도한 기업징수 전 분야의 프랑스병 대수술을 예고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민주혁명이다. 나는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소명을 알지 못한다"고 썼다.

마크롱 5년은 개혁의 시간이었다. 노동·국철·공공개혁을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였고, 입시제도를 뜯어고쳤다. 지지율 하락 압박에도 역대 정부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연금개혁에도 손을 댔다. 반발과 저항, 팬데믹까지 겹쳐 차기과제로 유보했지만 화약고를 건드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 지도자 모습은 감동이라 할 만했다.

유럽 재건을 외친 마크롱은 스트롱맨 조련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진 우크라이나 담판은 결국 무위로 끝났지만 그만큼 푸틴에 밀리지 않는 유럽 지도자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뜻밖의 브로맨스를 뽐냈으면서도 면전에서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를 신랄히 비판했던 이도 마크롱이다.

프랑스 경제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난해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7%로 52년 만에 최고였다. 실업률은 7.4%로 13년 만에 가장 낮았다. 체질이 바뀐 덕이다. 그렇지만 정작 프랑스 국민의 표정은 밝지 않다. 개혁 피로감이 쌓인 데다 무엇보다 치솟는 물가 때문이다. 극우 후보 마린 르펜은 이 틈을 파고들며 민생에 주력했다. 10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가 예상 밖 접전이었던 이유다. 24일 결선에선 마크롱의 우세가 점쳐지지만 5년 새 더 강해진 르펜의 존재감은 예사롭지 않다. 서구 언론은 고물가 속 극우의 기승을 우려했다.


저널리스트 아담 플로라이트는 '마크롱의 시련과 영광'에서 2018년 들끓었던 '노란조끼' 반정부 시위를 두고 이런 지적을 했다. "강한 프랑스의 부활 신호로 마크롱을 택했던 유권자들이 막상 먹고사는 일에 문제가 생기자 냉정하게 돌아섰다.
" 지금도 마찬가지다. 민생에 흔들리는 마크롱, 어떤 비장의 카드를 내놓을 것인가.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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