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앵커'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통해 만난 정지연 감독은 "여성 이야기를 장르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이런 사람도 있다는 얘기로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지연 감독이 연출한 '앵커'는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천우희 분)에게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며 직접 취재해 달라는 제보 전화가 걸려온 후, 그녀에게 벌어진 기묘한 일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 오는 20일 개봉한다.
정지연 감독은 단편 '봄에 피어나다'(2008)와 '소년병'(2013) '어떤 생일날'(2013) '감기'(2014) 등으로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감독으로, '앵커'를 통해 처음으로 상업영화에 데뷔했다. 첫 상업영화에서 그는 미스터리한 사건과 더불어 엄마와 딸의 애증, 갈등 관계를 엮어내는 서사로 흥미로운 스릴러 장르 영화를 완성했다.
무엇보다 '앵커'는 '연기 신(神)'으로 불리는 천우희 신하균 이혜영 세 배우의 출연으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정지연 감독은 "연기신들이 모여서 제 얘길 들어주시고 여러가지 같이 고민해주신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고도 전했다. 세 배우들의 압도적인 심리 표현과 반전 스릴러가 돋보이는 장르 연출이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이기까지 과정은 어땠을까. 정지연 감독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앵커'의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N인터뷰】①에 이어>
-세라와 인호의 최면 치료신 촬영 과정은 어땠나.
▶최면 치료신은 어떤 구상이 있었다. 폐쇄적이고 작은 사각형 공간에서 세라의 무의식은 열려있는 공간으로 나가고, 그러다가 창고라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는 구상이었다. 최면 치료를 하는 장면 자체는 좁고 밀도 있고 갑갑한 느낌을 많이 주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작고 밀도 있는 공간을 신경써서 연출했다. 우희 배우님도 목이 졸리는 연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런 압박감이 느껴질 만한 분위기가 돼 있어야 해서 좁은 공간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있으면 했다.
-극 중 등장하는 박쥐와 사슴은 어떤 의미인가.
▶박쥐와 사슴 같은 경우는 재미적인 요소로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최면 치료에서 외적인 세계로 나왔을 때 세라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게 엄마의 집과 관련된 거면 좋겠는데, 일상적인 것에 오면 좋겠다 했다. 하지만 상상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귀신은 뻔하게 느껴져서 들판에서 마주하는 동물들이 상징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더라. 또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알고보면 일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걸 찾았다.
-공간 구성에서 신경 쓰고 싶었던 것은. 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면.
▶공간에 물이 많이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영화의 오프닝도 물에서 시작하는데 침수돼 있는 느낌을 연출을 하고 싶었다. 물이 저한테는 중요했던 것 같다. 물이 주는 무서운 분위기가 있고 빠져 죽을 것 같이 느낌이 있다. 또 물이 주는 해방감도 있다. 그 흐름만 유연하게 잘 탈 수 있다면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세라가 해방되는 과정까지 물을 조금 조금씩 깔아서 표현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물의 어둡고 축축한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고 심리 변화와 함께 긍정적인 느낌에 가까워지는,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느낌으로도 표현됐으면 했다. 또 엄마의 자궁을 상징하는 느낌이었으면 했다. 음습하고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지만 엔딩에서는 엄마를 벗어나 다시 태어나서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으면 싶었다. 관객분들이 그런 것까지 많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엄마 소정 역할을 관객이 어떻게 봐주길 바라나. 어떤 엄마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대중영화나 드라마에서 엄마라는 인물을 다룰 때 희생적인 엄마로 다루거나, 혹은 나쁜 엄마로 다루는 시선이 즐겁진 않았다. 물론 그렇게 다룰 수도 있지만 스테레오타입화되는 데 대해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저는 영화 주제와 가까운 양가적 감정처럼 엄마의 양면성을 받아들일 때 여성이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것, 또 엄마가 이상화되는 것 때문에 안타까운 범죄도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연민을 가져줬으면 했고 엄격한 잣대를 대지 않으면서 엄마라는 역할을 표현하고 싶었다.
-세라와 소정의 관계를 위해 참고한 감정선이 있나.
▶소정은 극단적인 엄마인데, 저희 엄마는 그렇진 않다. (웃음) 물론 비슷한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희 어머니 세대는 공부도 하고 대학도 나왔지만 결국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사는 세대가 됐고 그래서 자식에게 기대하는 게 많아진 것 같다. 거기서 오는 엄마로서의 의무감이 자식을 힘들 게 할 수 있겠다 생각한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걸 자녀에게 바라기도 하는데 저도 그런 걸 느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생각한다. 그걸 비난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됐다.
-여성의 출산에 대한 고민들은 사회생활하며 느꼈던 것이 포함된 것인지.
▶제게 사회생활이란 감독이 되는 과정이었는데 저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 걸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감독이 되는 게 숙제 같이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게는 결혼과 일이 양립할 수 없는 욕망이라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다.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살면서 아이까지 갖겠다 하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했다. 아예 시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첫 장편을 연출하며 고민과 노력이 많았을 것 같다. 동료들과 어떤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나.
▶제작사 대표님이 동료로서 많이 격려해주셨다. 제 이야기를 처음 들어주신 분이었고,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는데 재밌다고 말해주셨다. (웃음) 그래서 저는 이 얘기가 무슨 얘긴지 알게 하려고 노력했다. 울고 웃고 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했다. 저와 함께 졸업했던 영상원 동기들, 지금도 함께 달리고 있는 동료들이 시나리오를 봐주면서 싸우면서 격려하고 다독여준 것 같다. 개봉 축하 문자도 오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더라.
-'나는 곤경에 처했다!'에서는 직접 연기를 하기도 했다.
▶제가 영상원을 나왔는데 서로의 작품에서 배우를 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감독님이 실수로 저를 캐스팅하셨다. (웃음) 물론 부끄러워서 드리는 말이다. 배우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걸 원해서 부탁해주셨던 것 같다. 저는 연기를 못하는 것도 있고 카메라 울렁증이 심하다는 걸 깨닫고 카메라 뒤에서야겠다 생각한다. (웃음) 히치콕 감독처럼 카메오로는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재미로 추억으로 해보고픈 마음은 있다.
-소재나 아이디어는 주로 어떻게 찾나. '앵커'를 통해 듣고 싶은 반응은.
▶지금 너무 오래 (글을) 쓰고 만들어온 '앵커'를 떠나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앵커'를 많이 털어내면 (앞으로 쓸 이야기가) 보일 것 같다. 이전에는 딸의 이야기로 많이 풀어갔다면,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온전히 엄마 입장에서 장르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저는 여성 이야기를 장르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이런 사람도 있다는 얘기로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었다. 그런 영화를 재밌게 만들어서 보고 싶게 하는 것, 거기에 대한 의무감과 사명감이 크다. 제 안에 그런 무의식적인 소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재는 여러 책과 많은 문화를 경험하면서 얻는 것 같다. '앵커'를 통해 듣고 싶은 평이 있다면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새롭게 알게 됐다는 반응이 기쁠 것 같다.
-'앵커'는 감독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은, 안 만날 수 있다면 안 보고 싶은 가족, 친구 같은 느낌이 있다. (웃음) 저는 때때로 '내가 감독까지 왜 왔을까' 한다. 저 같이 소심하고 부족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과 이걸 하겠다고 어떻게 왔을까 한다. 스스로 신기하다. (웃음) 저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데 그걸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걸 더 크게 외치고 싶어서 영화를 선택한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으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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