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직장 내 괴롭힘' 신고했다가 절반은 취하

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14 18:30

수정 2022.04.15 15:27

녹음기록 등 증거 확보 어려워
검찰 송치 사건 1.2%에 불과
#."XX, 너는 생각이 없냐?" "야 이 XX야, 죽을래?" A씨는 지난해 10월 회사 부장이 매일 따로 불러내 자신에게 욕설을 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부장을 신고했다. 부장은 주먹으로 A씨의 가슴을 치면서 욕설을 했고 술자리에서는 양 손으로 A씨의 멱살을 잡거나 머리채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분리조치가 힘들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A씨는 회사 측으로부터 "너도 똑같이 하라"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직장내괴롭힘금지법(금지법) 시행된 지 2년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제대로 보호받지 직장인들에 대한 사례가 잇따른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더라도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어려울 뿐 아니라 처벌도 요원한 탓이다.


14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2019년 7월 16일부터 2021년 10월 13일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1만2997건에 달한다. 이 중 43.5%는 취하됐다. 입증 과정이 어려워서다.

김기홍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녹음 기록이라든지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런 증거를 갖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증거를 마련해도 판단 기준이 모호해 고용노동부 소속 감독관의 자의가 개입할 수 있다.

지난해 6월께 B씨(23·여)는 회사 창고에서 대표(38·남)에게서 "못 배워쳐먹은 XX이 우리 회사 망하게 하려고 그러냐" 등 욕설을 2시간 가량 들었다. 회사의 부당한 지시에 이의를 제기한 B씨가 권고사직을 당한 뒤 실업급여를 신청하자 대표가 앞서 받고 있던 회사 지원금이 끊길지 모른다고 걱정하면서였다.

이에 B씨는 고용노동부 지방청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고 감독관은 신고를 취하했다. 부하직원이 대답을 하지 않으면 화가 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기쁨 기쁨노무사사무소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지 얼마 안 돼 판단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며 "좀 더 사례가 쌓여야 판단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가 취하되지 않아도 처벌은 요원하다. 금지법 시행 후 지난 10월 13일까지 실제 신고 후 개선 지도가 이뤄진 사건은 23.8%에 불과했고 검찰 송치로 넘어간 사건은 겨우 1.2%였다.

근로기준법 76조의3(직장 내 괴롭힘 발생시 조치)에 따라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거나 사실을 인지할 경우 △지체없이 객관적 조사 △피해자 보호(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등) △가해자 징계 △비밀유지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이 막연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고, 만약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아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도 벌금이 아닌 과태료만 내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검찰로 송치되는 경우는 근로기준법 76조의3에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뿐이다.


정현철 직장갑질119 사무국장은 "해고는 극단적인 상황이고 불리한 처우는 많이 발생할 수 있는데 모호하게 규정했다"며 "실제로는 회사 내에서 사실상 왕따를 하는 식으로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 피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리한 처우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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