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여기서 산 지 거의 20년이 다 됐는데 하루아침에 떠나라고 하면 가겠습니까"
14일 오전 서울 용산역 근처 텐트촌에서 만난 A씨(60)는 연거푸 담배를 태우며 한숨을 쉬었다. 텐트촌 일부를 가로지를 계획인 신설 용산역-드래곤시티호텔 육교 공사 때문이다. 시공사도 15일까지 텐트를 치워달라고 통보했다.
텐트촌 주민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18년째 용산역 텐트촌에서 지내고 있다는 A씨는 지난달 말까지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했다.
현재 텐트촌 철거 대상은 총 4개동이다. 여기엔 주민들 6명이 거주 중이다.
약 30여명의 노숙인이 사는 용산역 텐트촌은 갑작스러운 퇴거 위기 속에도 조용했다. 빼곡한 나무들 사이 설치된 20여개의 텐트들 주변에서 노숙인들은 양치하거나 기지개를 켜며 아침을 맞았다. 여기저기 빨랫줄에는 옷가지가 널려있었고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외부인을 맞았다.
당장 다음날이 퇴거 시한이었지만 텐트촌 주변 공터에는 굴착기나 덤프트럭 등 아무런 중장비도 보이지 않았다. 퇴거 날짜나 대상을 안내하는 공문이나 텐트촌을 찾은 시공사 직원들도 없었다.
하지만 A씨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A씨는 "내일 당장 쫓아내려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계속 여기에 남을 수 있지 못할 것 같아 걱정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10년간 목공으로 일했다던 A씨는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이웃들을 도와줬다고 했다. A씨는 자신의 텐트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이 텐트를 보고 도와달라고 부탁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랬던 A씨는 현재 허리를 다쳐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는 "짐도 많고 텐트를 다시 치기도 어려워서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토로했다.
불안은 공사구간 밖의 주민에게도 퍼져 있었다. 6년째 텐트촌에서 지내고 있다는 B씨(54)는 "공사가 시작되면 나무도 뽑을 텐데 그러면 보기 안 좋다고 텐트를 철거해달라는 민원도 들어올 수 있다"며 "텐트 4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일대가 다 영향받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철거 대상 노숙인들은 텐트를 다른 구역으로 옮기거나 임시 주거지원을 통해 고시원이나 쪽방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A씨는 "이미 텐트촌 안에는 옮길 자리도 없다"며 "고시원에도 살아봤지만 너무 답답해 차라리 텐트촌이 낫다"고 손사래를 쳤다.
B씨도 "이곳에서 살다가 하루아침에 (고시원처럼) 답답한 곳을 가면 누가 버틸 수 있겠냐"며 "가도 적응 못 하고 다시 여기로 오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퍼지는 불안감 속 주민 간 갈등도 나타났다. A씨는 "계속 버티다가 큰일이 날 것 같다고 우리한테 따지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하고 속상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A씨는 텐트촌에 남겠다고 했다. "거의 20년간 살았던 집에서 하루아침에 나가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텐트를 다시 칠 장소만 마련해주면 좋겠다. 그것뿐이다"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곧 철거될 예정인 용산역 구름다리에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편안하고 아름다운 보행 육교를 건설하겠습니다"라는 공사 안내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구름다리 밑으로 보이는 텐트촌에는 "주민 퇴거위협 용산구청이 직접 해결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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