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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인플레 파이터' 자처한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19 18:03

수정 2022.04.19 18:03

"인기 없더라도 금리 인상"
정치권 반발 극복이 관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금리인상이) 인기는 없더라도 시그널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다. 이 후보자는 "미국처럼 물가가 오른 뒤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리면 굉장히 많은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기준금리 0.5%p를 한꺼번에 올리는 '빅 스텝'을 고려 중이다.
반면 우리는 선제적으로 차근차근 금리를 올려 성장정체와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4일 총재 공백 속에서도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하는 결정을 내렸다.

금리인상 같은 비인기 정책을 펴겠다는 이 후보자의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 중앙은행 총재는 물가안정이 지상과제다. 다른 거 아무리 잘해도 물가가 뛰면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이 후보자는 "물가상승 국면이 적어도 1~2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 사태 후유증 속에 우크라이나 전쟁 변수까지 더해졌다. 팬데믹이 엔데믹(풍토병)으로 바뀌고, 우크라이나에서 포성이 멎으려면 이 후보자가 말한 대로 1~2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가 총재로 취임하면 배워야 할 인물이 있다. 인플레이션 투사로 이름을 날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다. 볼커는 카터·레이건 대통령 아래서 1979년부터 8년간 의장으로 재임했다. 당시 미국은 이란혁명이 부른 2차 오일쇼크로 물가가 기록적으로 치솟았다. 1980년 3월 소비자물가는 14.8%를 찍었다. 볼커는 기준금리(연방기금금리)를 최고 20%(1981년 6월)까지 끌어올렸다. 그 덕에 물가는 고삐가 잡혔다.

그러나 금리인상은 짙은 그늘을 남긴다. 전례 없는 초강력 긴축 탓에 성장률은 뚝 떨어졌고, 실업률은 쑥 올랐다. 정치권은 대놓고 볼커 의장을 비난했다. 빚더미에 오른 농부들은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DC에 있는 연준 건물로 몰려와서 시위를 벌였다. 그래도 볼커는 끄떡하지 않았다. 그만한 배짱이 없이는 금리인상을 지속하기 힘들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50조원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이 후보자의 인식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추경의) 양이 커서 물가에 영향을 주게 되면 한은도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물가가 불안한데 수십조원 규모의 추경까지 풀면 자연 물가를 자극하게 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15일 "물가상승 장기화에 대비해 물가안정을 포함해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종합적 방안을 잘 세우라"고 지시했다. 추경도 예외일 수 없다. 물가가 뛰면 최대 피해자는 자영업자 같은 서민이다.

이 후보자는 서면답변에서 눈덩이 국가채무 대응책으로 증세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과거 한은 총재들과 비교할 때 훨씬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 후보자는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금융기구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 이창용이 가진 넓은 시야는 소중한 자산이다.
새 정부가 그 자산을 널리 활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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