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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나쁜 엔저… 양적완화가 부른 부작용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19 18:03

수정 2022.04.19 19:57

[재팬 톡] 나쁜 엔저… 양적완화가 부른 부작용
요즘 일본에서는 '엔저'(달러 대비 엔화가치 하락) 앞에 수식어 하나가 붙는다. '나쁜' 엔저(와루이 엔야스)다.

곳곳에서 원성이 잦다. 엔화가치 하락에 수입가격이 뛰면서 라면·밀가루·식용유, 안 오른 게 없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약 6000개 품목의 가격이 최근 이미 올랐거나 인상이 예고된 상황이다. 인상 폭은 평균 11%다.
기업의 임금인상이라고 해봐야, 많아야 1~2%다. 일본 서민들로선 허리띠를 더욱 바짝 조여맬 수밖에 없다. 3개월 뒤 참의원 선거를 치러야 할 자민당 정권으로선 좌불안석이다. 엔저가 종국엔 일본 경제에 '득'이 된다고 주장해 온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도,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나쁜 엔저일 수 있다"고 꼬리를 내렸다.

엔저는 아베노믹스의 산물이다. 2013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취임과 동시에 "엔화를 무제한으로 찍어내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며 대규모 금융완화에 나섰다. 2012년 11월 중반 '1달러=70엔대'의 엔고상황은 수개월 만에 '1달러=100엔'으로 가속페달을 밟더니, 최근엔 '1달러=130엔'을 향해 더욱 가파른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도요타 등 수출기업들이야 엔저가 좋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이 좀처럼 일본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기업들은 투자나 임금인상 대신 사내 유보금을 쌓거나 배당에 더욱 골몰하는 모습이다. 그러니 엔저를 둘러싼 원성이 클 수밖에 없다. 소득은 늘지 않는데 물가가 오르니 서민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최근 화두가 된 '격차사회(양극화)' 문제를 부각시키는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더 큰 우려는 "이대로 가다가는 엔저가 영영 고착화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당장의 엔저는 미·일 금리차에 따른 급격한 자본의 이동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일본 경제 펀더멘털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안전자산'이란 타이틀도 반납해야 할 정도로 체급이 약해졌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엔저의 시작점인 "아베노믹스와 결별해야 할 때"라는 등 아베 유산과의 결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최근 다쓰자와 겐이치 교토 다치바나대 객원교수는 일본 경제매체 프레지던트에 "역시 아베노믹스가 원흉이었다"고 다소 자극적 언어로 아베노믹스를 맹렬히 비판했다.


10년 가까이 지속해 온 양적완화라는 '모르핀'을 끊어야 할 때라는 것인데, 양적완화와 그로 인한 엔저, 그럼에도 불구한 저물가에 길들여진 일본 경제가 과연 진통제를 끊을 수 있을 것인지, 이에 대한 답도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침체터널이 길고도 길다.
이 딜레마가 지속되면서 당분간 모르핀의 부작용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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