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검수완박 입법의 덫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20 18:01

수정 2022.04.20 18:01

[노주석 칼럼] 검수완박 입법의 덫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이 국민을 볼모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추진 중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이익과 국민 인권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입법이라고 말한다. 정권 임기 내 끝장을 볼 요량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검찰은 반박한다. 법률안 공포권을 쥔 문재인 대통령은 "개혁은 국민을 위한 것이 돼야 한다"면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있다.

법 개정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심판 모두 국민 타령이다.
누구 말이 옳은가.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이 방탄 혹은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 어쩌다 국민 몫이 됐나. 국민은 어안이 벙벙하다. 검찰이 이렇게 약세를 보인 적이 있었나 싶다. 19년 전 노무현 대통령과 맞짱 뜨던 기개는 보이지 않는다. 지는 권력과 뜨는 권력에 양다리를 걸친 검찰총장부터 검사장까지 한결같이 행색이 초라하다. 토사구팽을 목전에 둔 사냥개가 주인의 신발을 핥으며 눈을 맞추는 격이다. 정권 말과 정권 초 지는 권력을 집중적으로 물어뜯어온 검찰의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검수완박 입법폭주의 진위와 위헌 공방엔 별 관심이 없다.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서로 물고 뜯으니 혐오감이 들 뿐이다. 정치권력이나 검찰권력이나 미덥지 않긴 매한가지이다. 솔직히 검찰의 수사권을 가져갈 경찰이 펼칠 과잉수사와 부실수사의 앞날이 걱정이다. '검찰 공화국' 대신 '경찰 공화국'을 만들자는 속셈인가. 검찰이 떠난 자리를 경찰이 독차지하게 생겼다. 정보 수집권에다 수사권마저 독차지하는데 견제장치는 없다. 중국 공안보다 더 무시무시한 통제불능의 새 권력집단 탄생을 예고한다. 이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면 누가 경찰의 가혹행위를 밝히랴.

말단 순경부터 경찰청장까지 11단계로 나뉜 경찰의 계급구조는 승진과 인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퇴직하면 변호사가 되는 검사는 욱하면 사표를 던질 수 있지만, 제때 승진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 경찰은 인사권을 가진 지휘부와 이에 개입하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검수완박 이후의 시나리오를 먼저 제시하는 게 순서였다. '한국형 중앙수사국(FBI)' 설립 같은 청사진부터 챙겼어야 했다.

서두는 바람에 일을 그르친 형국이다. 2024년 총선까지 국회를 지배하는 정당이 밟을 수순이 아니었다. 검찰 개혁이 검수완박으로 이름을 바꾸는 순간 가해자는 민주당, 피해자는 검찰로 둔갑했다. 불과 1년 전 "검수완박, 부패완판"을 외친 윤석열 검찰총장이 목하 대통령 당선인이 된 마당이다.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은 민심과 권위를 잃었다. 공자는 식량과 군대, 백성의 믿음 중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먼저 군대를 포기하고 다음으로 식량을 포기한다고 답했다.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바로 서지 못하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이치를 설파했다. 또 막스 베버는 권력(Power)과 권위(Authority)는 다르다고 했다.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권력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전통적 권위, 법적·합리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 중 한 가지 이상의 권위가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정당한 권력을 유지하려면 국민의 믿음과 권력의 권위가 뒷받침돼야 한다.
국민이 최대 피해자가 될 판국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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