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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전이 어쩌다 전력을 외상 구매하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20 18:01

수정 2022.04.20 18:01

적자 늪에 빠져 고육책
탈원전 궤도 수정해야
한국전력이 18일 발전 공기업에 지급해야 할 전력대금에 대해 다음달부터 외상도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변경했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공사. 사진=뉴시스
한국전력이 18일 발전 공기업에 지급해야 할 전력대금에 대해 다음달부터 외상도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변경했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공사. 사진=뉴시스
한국전력이 전기를 외상으로 사서 공급할 수 있도록 규칙을 바꿨다. 한 달에 네 번씩 자회사인 발전 공기업에 내는 전력 구입대금을 다음달 1일부터 한 차례 납부유예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지난 1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거래소, 한전 등 전력당국은 이런 내용의 '전력거래대금 결제일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의결했다.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이 어쩔 수 없이 택한 궁여지책인 셈이다.


만일 유일한 전력 소매 공급자인 한전이 발전사들에 대금 납부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전력거래는 중단된다. 이번 조치로 그런 초유의 사태는 면하게 됐다. 하지만 임시변통일 뿐이다. 전기료 수입은 시원찮은데 빚만 쌓이고 있는 한전의 재무구조는 그대로라서다. 한전은 지난해 5조8600억원 적자에 이어 올 1·4분기에만 6조원 영업손실을 낼 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발전용 연료 가격이 급등한 게 단기 요인이다.

장기적으로 한전의 재무구조가 더 악화될 소지가 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선 표밭을 의식해 전기료 연료비 연동제를 포기한 기조 그대로라면 올해 적자 규모는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5년간 40조원 늘어난 한전의 총부채는 벌써 146조원대다. 한전이 매달 이자만 100억원 이상을 내며 외상거래란 편법으로 버텨야 할 판이다.

초우량 공기업이던 한전의 신체충실지수가 왜 이렇게 나빠졌겠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한 요인일 것이다. 지난 5년간 평균 원전 이용률이 지난 정부 때보다 10%p나 낮아졌다. 그 공백은 발전단가가 세 배 이상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메워야 했다. 문 정부는 "탈원전을 해도 전기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한전이 외상거래를 하게 된 현시점에서 보면 '양치기 소년'이 되고만 꼴이다.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정상궤도를 벗어난 에너지정책을 바로잡는 게 맞다. 두부값(전기료)이 콩값(연료비 등 발전비용)보다 더 싸다는 푸념이 왜 나오겠나. 정부가 물가관리 차원을 넘어 정치적 고려까지 보태 전기요금을 묶어둔 결과다.
대선에서 전기료 동결을 공약한 윤석열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언제까지 '전기료 폭탄' 돌리기를 계속할 건가. 신구 정부가 에너지바우처 확대 등 취약계층의 부담을 낮추는 걸 전제로 전기료 현실화 논의에 머리를 맞댈 때다.
현 정부가 고리2호기 수명연장 등 신정부의 탈탈원전 행보에 적극 협력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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