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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남북 정상 서신 교환, 北 비핵화는 뒷걸음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22 15:30

수정 2022.04.22 15:30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 교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 교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서를 교환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오전 브리핑에서 정상간 친서교환 사실을 밝혔고,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새벽 같은 소식을 전했다. 정권교체기에 남북 정상이 친서를 교환한 건 퍽 이례적인 일이다. 친서의 행간에 깔린 복선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에 상당한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아쉬움은 많지만 이제껏 노력을 바탕으로 남과 북이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퇴임하는 문 대통령에게 보낸 의례적 덕담을 넘어 주목되는 대목이다. 곧 출범할 신정부를 향해 관계 개선을 바라는 듯한 애드벌룬을 띄웠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서신엔 북한의 비핵화에 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지난 2019년 미·북 간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핵 보유 의지를 노골화했었다. 특히 올 들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는 등 소나기처럼 미사일 도발을 지속했다. 이로 인해 유엔에서 더 강도 높은 대북 제재가 논의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했으니 아무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번 서신 교환의 형식에서도 남남갈등 유발 의도가 엿보이는 게 사실이다. 윤 대통령 당선인 측을 제쳐두고 곧 임기를 마치는 문 대통령과 종신집권자인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 발전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선 이후 북핵 대응 차원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는 윤 당선인을 기회 있을 때마다 맹비난해온 터였다.

물론 3차례나 회담을 가진 남북 정상이 퇴임 인사를 겸해 친서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이 보낸 친서에도 북 비핵화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없었다는 게 문제다. 청와대 측은 "북·미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길 희망한다"고 한 문구가 사실상 북측에 도발 자제를 당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의 레드라인을 넘은 ICBM 발사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수명을 다한 마당에 면피용 수사라는 인상이 들 뿐이다.

우리 측 정권이양을 앞둔 이번 서신 교환은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을 안긴 측면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은 “대화 재개는 다음 정부의 몫”이라고 했지만, 김 위원장은 “역사적 선언과 합의는 지울 수 없다“고 윤석열 정부를 겨냥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이 대선 때 공약한 대북 정책에는 판문점선언과 평양 9·19 선언 등이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보고 이를 대체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직인수위는 이날 일단 긍정적인 취지로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 즉 "비핵화를 통해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는 것이 민족의 대의"라면서다.
북한 비핵화 이슈가 새 정부의 최우선 현안이 될 것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어차피 북핵 문제는 임기를 보름 남짓 남겨둔 정부가 방학 내내 놀다 개학 코앞에서 밀린 숙제를 하듯이 풀 순 없다.
괜한 혼선을 초래할 게 아니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해 문 정부가 그간 파악한 동향을 신정부에 정확히 인계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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