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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위 넓고 책임 무거워" 재해 드문 금융·IT기업도 골머리 [중대재해법 시행 100일]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24 18:28

수정 2022.04.24 18:28

"만의 하나 사고라도 이미지 타격"
현장업무 적은 업계도 대비 강화
재계, 경영자 처벌 완화 요구 속
인수위 일단 시행령 개정 검토
"범위 넓고 책임 무거워" 재해 드문 금융·IT기업도 골머리 [중대재해법 시행 100일]
새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대폭 손질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무엇보다 처벌 강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를테면 경영책임자에 대한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 처벌규정을 벌금형 중심의 처벌로 바꾸자는 것이다. 또한 안전관리를 강화하고도 처벌받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규정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중대재해법 대비가 건설·제조업 중심에서 전 업종으로 확장되고 있다. 금융업이나 IT업종 등 산업재해와 관련성이 적어 보이는 업종에서도 중대재해법 대비로 분주하다. 사고 가능성이 현저히 낮더라도 만에 하나 발생할 사고에 준비하자는 것이다.
기업이미지 손실과 경영자 처벌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금융·IT업계도 "예외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 대응 시나리오 마련에 전념했던 업종은 주로 현장 인력이 많은 제조업, 장치업, 부품업종과 건설업종이 1∼2순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사고발생 범위는 넓고 책임소재는 본청으로 강화되다보니 두 손을 놓고 있던 업종들도 대책 마련에 고심이다. 대표적인 게 금융과 IT업계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잇따라 안전관리자를 선임하고 사내 안전보건 규칙을 제정하는 등 중대재해법 대비에 한창이다. 한 금융 대기업 종사자 A씨는 "금융권은 중대재해법과 무관한 업종인 줄 알았는데 업계 다른 회사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며 "큰 사고는 아니지만 금융업종 자체가 정부의 규제에 매우 민감하다 보니 경영자는 중대재해법 처벌 이슈에 예민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완전히 안심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IT업계에서도 최고 안전책임자를 선임하는 등 중대재해법에 대비하고 있다.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발과 실행뿐만 아니라 IT 관련 데이터센터 등 주요 시설물 공사가 많기 때문이다. IT와 접목된 모바일 플랫폼 업체들의 경우 대규모 물류센터 건설과 관리가 맞물려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의 타깃이 될 수 있다. IT 업계 관계자 B씨는 "건설업 같은 업종보다 사망 확률이 훨씬 낮지만 데이터센터 공사, 관리 등에서 사고가 발생할 가능을 배제할 순 없을 것 같다"며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은 만큼 대비하자는 것"이라고 전했다.

■징역은 가혹?…처벌 수위 내려갈까

경영계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처벌 수위 완화다. 중대재해법은 사망사고 발생 시 경영책임자에 징역형까지 부과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법률상 경영책임자 의무 내용의 불명확성을 해소하고, 경영자에 대한 하한형(1년 이상)의 징역형을 삭제하는 등의 방향으로 법률 개정을 해야 한다"고 인수위에 요청했다. 재계는 또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애매모호한 법 문구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행령에 명시된 '필요한 인력을 갖추어' '필요한 예산을 편성·집행할 것'에서 '필요한'이라는 표현이 추상적이다. 또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는 부분에서 '실질적'이라는 표현이 명확하지 않다. 법 해석을 두고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강력한 법 규정으로 인해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의 한국 투자 매력을 떨어뜨린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총이 지난해 외투기업 22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0인 이상 외투기업은 중대재해법을 가장 부담되는 규제 및 애로사항 1위에 올렸다. 처벌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경영자들이 한국행을 꺼린다는 말도 나왔다.
한 외국기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에 대한 공포심으로 한국지사 부임을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했다.

인수위는 중대재해법 개정 대신 우선 시행령을 개정해 안전조치 의무를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 개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단 정부 시행령을 개정해 처벌을 완화할 방침이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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