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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공급망이 흔들려도… 경제 성장률이 추락해도 제로코로나 포기않는 中의 속내 [글로벌 리포트]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24 18:38

수정 2022.04.24 19:04

글로벌 기업 탈중국 이미 시작
대도시 봉쇄로 경영타격 심각해지자 中상무부, 각국 상의 대표와 회동
물류이동·격리단축 등 요청 나왔지만 기존 방역정책 유지한다는 입장
그 중심에는 시진핑의 3연임
2020년 말 이미 코로나 승리 선언
재창궐 인정은 곧 '정부의 무능'
10월 '대관식' 까지는 초강력 방역
장기집권 방해하는 요소 차단할듯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 상하이에서 방역복을 입은 봉사자가 지난 12일 마이크를 통해 아파트 주민들에게 유의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AP신화통신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 상하이에서 방역복을 입은 봉사자가 지난 12일 마이크를 통해 아파트 주민들에게 유의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AP신화통신
전세계 공급망이 흔들려도… 경제 성장률이 추락해도 제로코로나 포기않는 中의 속내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지난 18일 오후 중국 베이징의 모처. 왕원타오 상무부장(장관급) 초청으로 한국·미국·유럽연합(EU)·영국·독일·일본 상공회의소 회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았다. 코로나19 재창궐과 봉쇄로 기업 피해 호소가 잇따르자, 중국 측이 고충을 직접 듣겠다며 마련한 간담회다. 중국 상무부는 국내외 무역과 상공업무, 외국투자, 대외원조, 국제 경제협력을 담당하는 곳이다.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와 그 기능이 유사하다.
이런 상무부가 각국 상공회의소 회장들을 불렀다는 것은 외국 기업들이 직면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로 풀이된다. 각국 기업인 현지 대표로 구성된 상공회의소는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법적 경제단체로 알려져 있다.

현재 중국은 확진자 1명도 용납하지 않는 이른바 '제로코로나(칭링·淸零)'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에 미치는 후폭풍과 사회적 반발까지는 차단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외국 투자는 줄고 기업과 고급인력들은 집중격리와 불확실성을 피해 탈중국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인조차 제로코로나의 효과를 의심하며 동요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중국 정부는 아직까진 제로코로나를 수정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정책은 오는 10월초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대관식인 20차 당대회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행사 성공을 위해선 제로코로나 역시 유지돼야 한다는 게 중국 입장이다.

■물류·공급망 우려 한 목소리 6개국 8명 대표

24일 정재계와 소식통, 외신 등에 따르면 각국 상의 회장들이 왕 상무부장과 회의에서 가장 큰 주목한 부분은 물류 차단 문제였다. 이들은 상하이발 물류·공급망 충격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개선해줄 것을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윤도선 주중 한국상회 회장(CJ중국본사 대표)은 봉쇄지역으로 원자재를 이동시킬 수 없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필수 원자재와 인력은 예외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일부 기업은 경영상 마비상태에 있고 물류비용도 증가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희망했다.

줄리언 맥코맥 주중 영국상의 회장도 최대 관심사는 물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하이의 경우 화물 출입이 불가능하고 지역 간 교통수단도 막혀 있기 때문에 생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지난해 산시성 시안 봉쇄 때 회복에만 수개월 소요됐다며 새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결국 1년은 경영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스테판 월렌슈타인 주중 독일상의 회장(폭스바겐 중국대표)은 상하이 지방정부가 기업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미래에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상하이시처럼 상무부도 '화이트 리스트'(주요 업종 조업재개) 관리 체계를 도입해 달라고 촉구했다. 독일 기업 중 투자를 중단하자는 의견도 있었다면서 조세 감면, 임대료 할인 등 중소기업 부담 완화를 외국기업에게도 적용해 줄 것도 건의했다.

매튜 마굴리스 미중 비즈니스위원회 중국부문 부회장의 불만은 보다 구체적이다. 그는 지방정부의 방역정책 불확실성으로 신제품 발표가 연기되고 장쑤성 쿤산과 타이창 제조업은 생산이 중단됐으며 도로·수로·항공 물류 차질, 도시 내 교통 통제 등도 거론했다.

마굴리스 부회장은 봉쇄 장기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기업의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초창기보다 손실이 더 크며 중국에 대한 공급망 신뢰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을 입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주중 미국 상의가 이달 초 중국에 있는 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7%는 이미 3월에 공급망이 중단됐다고 답했다. 또 54%는 작년 수익이 감소했으며, 81%는 직원 이탈이 발생했다고 콜므 래퍼티 주중 미국상회 회장은 왕 상무부장에게 설명했다. 조르그 우트케 주중 EU상의 회장은 콜드체인 물류가 상하이 창고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창장삼각주(상하이시·저장성·장쑤성·안후이성 등) 지역에서 물류 트럭의 자유로운 이동이 필요하다고도 주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창장삼각주 인구는 1억6000만명 이상이며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0% 가량을 차지한다"면서 "물류난으로 이 지역 일부 공장은 물건을 만들어도 완제품을 공장 내에 쌓아두고, 다른 공장들은 원자재나 부품을 받지 못해 가동을 멈췄다"고 보도했었다.

■출장·가족이동, mRNA 승인 요구

회의에선 직원과 가족들의 이동권 문제도 나왔다. 미코가미 다이스케 주중 일본상의 회장(스미토모상사 중국법인 대표)은 온라인 회의로는 기업 경영이 원활하지 못하다면서 베이징 직항을 다시 열어주고 지방 입국 시 5주간(지방 3주+베이징 2주) 소요되는 격리시간 단축도 제안했다. 윤 회장은 본국 경영진이나 기술지원팀의 중국 출장에 어려움이 커 신제품 개발 혹은 신규 투자 등에 지장이 있다고 말했다.

맥코맥 회장도 자국에서 인재를 파견해올 수 없고 강제 격리, 가족과 분리 등 불확실성으로 가족 초청도 어렵다며 국제학교의 경우 교원 40~60% 가량이 이탈해 충원이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영국 상의는 지난 20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탈한 교사가 대체되지 않으면 외국인 가족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이주해야만 할 것이고 중국으로 오려고 계획했던 이들은 다른 곳을 물색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의 코로나19 통제는 기업 활동에 점점 더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우트케 회장은 제조업이 대부분인 주중 유럽기업 상당수는 과거의 투자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인적 왕래가 중단된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 절반은 향후 투자 결정을 재검토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백신 접종 허용 또한 제시됐다. 중국 당국은 아직 화이자나 모더나 등 해외 개발 mRNA 백신은 허가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자국 업체인 캔시노가 개발 중인 mRNA 백신의 임상시험만 승인한 상태다. 중국은 그동안 불활성화 백신인 자국산 시노팜과 시노백 백신만 허용해 왔다. 그러나 이들 백신은 mRNA보다 오미크론 등에 효과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상의는 중국에서 mRNA 생산이 가능하다고 했고, 유럽상의는 연간 최대 7억5000만 도즈를 생산하면 4억 도즈를 중국에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측 모두 이들 백신과 중국산 백신을 혼합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상하이가 중국 재확산과 봉쇄의 핵심으로 떠오른 만큼 에릭 정 주상하이 미국상의 회장도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원활한 물류·공급망 보장 조치를 중국 정부가 발표한 뒤에도 여전히 차질은 빚어지고 있다며 격리 단축과 봉쇄 정책을 최적화해달라고 했다.

■中 봉쇄 해제 불가능·공급망은 개선

왕 부장은 각국 상의 회장들의 요구에 "중국은 외국 기업이 겪고 있는 물자부족, 물류 차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제로코로나 정책은 유지할 것임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시 주석이 지난 10일~13일 하이난성을 방문, "방역을 느슨하게 할 수 없다"며 제로코로나 정책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과 같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왕 부장이 공급망 안정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의 심각한 피해를 둘러싼 자신들의 우려를 달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봉쇄에 관한 중국의 입장은 경제 충격에 대응해 나가면서도 근본적인 정책 수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중국 경제는 지난해 말부터 산시성 시안, 중국판 실리콘밸리 광둥성 선전시, 자동차 생산 허브인 지린성 창춘, 경제수도 상하이 등 31개 성·시 대부분에 광범위하게 퍼진 전염병으로 연쇄 타격을 받았다. 중국 당국이 '안정 속 발전'을 기조로 통화·재정 지원에 나서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4.8% 선에서 방어하는데 성공했으나 상하이 등 주요 경제도시의 충격이 반영된 2·4분기엔 1.8%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노무라증권)이 나온다.

미래도 여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경제를 뛰어넘겠다고 공언한 2035년까지 시간을 가고 있는데 반해 미국의 제재는 강화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 글로벌 고립도 굳어지는 양상이다.

그래도 중국은 제로코로나를 버릴 수 없다. 방역 성공은 경제 발전과 함께 시 주석의 치적이 돼야 한다. 2020년 하반기에 코로나19와 전쟁에서 승리도 일찌감치 선언했는데 재창궐은 정부의 능력 부족 혹은 거짓말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있다.

자칫 봉쇄를 풀었다가 일파만파 확산되면 걷잡을 수 없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외신은 4억명에 달하는 노약자 취약계층이 부담이라고 분석했다.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한다. 또 중국인은 전통적으로 전염병에 대한 공포심이 크다. 농촌 등은 의료와 방역시설이 열악하며 바이러스는 지금도 변이 중이다.
왕 부장은 각국 상의와 간담회에서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견해라고 전제하면서 일부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주민의 반감이 상승하고 여기에 대규모 동요가 일어나면 장기집권 유지에 치명적이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24일 사설에서 "과도한 전염병 예방은 무책임하고 나태한 행위이며 신규 감염자가 없거나 단 한 명만 발생해도 도시 봉쇄 조치를 취할 경우 반드시 경제 민생에서 피해를 보는 곳도 있을 것"이라면서 "조업 재개는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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