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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로어노크 대학에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 표지판 설치

뉴스1

입력 2022.04.25 23:48

수정 2022.04.25 23:48

버지니아주에 있는 로어노크 대학내에 설치된 김규식 선생을 기념하는 표지판.© 뉴스1(로어노크 대학 홈페이지)
버지니아주에 있는 로어노크 대학내에 설치된 김규식 선생을 기념하는 표지판.© 뉴스1(로어노크 대학 홈페이지)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미국 버지니아주 로어노크 대학에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을 기리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25일(현지시간) 로어노크 대학 홈페이지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정부는 아시아태평양계 역사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김 선생을 선정하고 김 선생이 공부했던 이 대학에 기념물을 설치,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로어노크 대학 내에 설치된 해당 표지판에는 선생의 영문 이름인 'KIM KYUSIK'과 함께 독립운동가로서의 생애를 소개하는 글이 적혀 있다.

표지판에는 김 선생(1881~1950)을 '한국 독립운동의 지도자'라며 소개하며 김 선생이 한국에서 태어나 1903년 로어노크 대학을 졸업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 1910년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후 김 선생은 중국에 기반을 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외무총장(현 외교부장관격)으로서 근무했고, 나중에 학무총장(교육부장관)과 부주석을 지냈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선생이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창하고, 구미위원부 위원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중국에서 민족혁명당 창당을 도왔다고 부연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김 선생은 남한과 북한으로의 영구적인 분할을 반대했으며, 한국 전쟁 기간 북한군에 의해 납치돼 사망했다고 표지판에 적혀 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김 선생은 선교사 언더우드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넘어와 로어노크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프린스턴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취득했다.

귀국 뒤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침략을 규탄했고, 김구·이승만 등과 함께 임시정부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선생은 1950년 한국전쟁 때 피란을 가지 않고 서울에 남았다가 납북돼 그해 12월 북한에서 숨을 거뒀다.

마이클 맥시 로어노크대 총장은 과장이 아니라면서 김 선생이 "어떤 로어노크 졸업생보다 세계 역사에 위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를 기념하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버지니아주 정부는 지난해 초중고교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아시아태평양계 역사적 인물을 공모, 김 선생을 포함한 5명을 선정했다.


당시 버지니아주 컴벌랜드 중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 김 선생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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