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고양이에 생선 맡기면 생기는 일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5.01 18:07

수정 2022.05.01 18:07

[강남시선] 고양이에 생선 맡기면 생기는 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속담처럼 어떤 사람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 고양이는 생선을 먹어치웠다. 누구의 잘못일까. 생선을 맡긴 사람의 탓일까. 생선을 먹어치운 고양이의 탓일까. 고양이를 감시하지 못한 당국의 탓일까.

4월 27일 본지가 최초 보도한 '우리은행 직원의 578억원(원금 기준) 횡령 의심 사건'을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사건의 줄거리는 이렇다.

해당 직원은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서 이란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 578억원을 세 차례에 걸쳐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2010~2011년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을 주관하면서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으로부터 계약금 578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양측 간 계약이 깨지면서 우리은행은 이 계약금을 돌려줘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에 대해 금융제재를 하면서 우리은행은 이란에 송금을 할 수 없었다. 이 틈에 해당 직원은 돈을 챙긴 것으로 의심된다. 상황은 올 초 달라졌다. 우리나라가 이란에 돈을 송금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뒤늦게 우리은행이 해당 계좌를 열어봤지만, 돈이 사라진 뒤였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지난 10년간 아무도 횡령 의심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해당 직원이 지난 2012년 초 해당 계좌 관리업무를 맡은 이후 1, 2, 3차 횡령을 시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과정에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횡령 유용 사고액은 지난 2016년 13억1000만원(6건), 2017년 2000만원(2건), 2019년 5억8000만원(2건), 2020년 4억2000만원(3건), 2021년 4억원(2건) 등인 것으로 집계됐다.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하나를 못 막는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금융당국이 관리감독을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간 금융당국은 수장이 바뀔 때마다 "금융회사에 대한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공염불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도 있지만 우리은행의 사후대응도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은행은 사태가 외부에 알려진 4월 27일 이후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을 흐렸을 뿐'이라는 태도로 방관할 때가 아니다.

제발 이번 사태가 금융권 전체의 내부통제를 한층 강화하고 도덕적 해이를 근절하는 '예방주사'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다만 이번 사태가 대부분의 선량한 우리은행 임직원까지 싸잡아 비난하거나 금융권 전체의 신뢰가 추락하는 일로 비화되지 않길 바란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금융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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