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연구소 등 반도체 업계는 한 해 신규 인력이 1500명가량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은 연 650명 수준이다. 공급이 수요의 절반에도 미치는 못하는 셈이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반도체 학과 정원을 수요에 맞게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고급 인재를 가진 수도권 대학들은 수도권정비계획법의 벽에 막혀 있다. 그 보완책이 계약학과 설치이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5년 시한부인데다, 최고 인재가 모이는 서울대는 대학이 자칫 취업학원으로 전락한다는 이유로 계약학과 설치 자체에 반대다.
지난 2월 국회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곧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오는 8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특별법에도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는 빠졌다. 업계가 이 법을 반쪽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3일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여기에 반도체 등 미래전략산업의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총론은 좋지만 각론은 실망스럽다. 반도체 특성화대학 지정은 이미 특별법(37조)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그나마 '관련학과 정원 확대 검토'를 진전으로 볼 수 있으나 '검토'가 실행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웨이퍼를 들고 반도체 자립을 강조했다. 이달 하순 방한하면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는 것은 물론 삼성전자 공장을 직접 방문할 수도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이 그만큼 미국 경제안보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만은 비메모리 세계 1위 업체인 TSMC를 범국가적으로 밀어준다. 그에 비하면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말만 요란할 뿐 행동은 따르지 않는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지난 1982년,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에 만들어졌다. 서울 등 과밀억제권역에서 대학 입학 정원을 늘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대의는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게 법을 손질할 때가 됐다. 말로는 반도체 최강 코리아를 외치면서 관련 학과 정원은 수십년째 꽁꽁 묶어두는 게 말이 되는가. 더불어 대학 내 문·이과 정원도 시장 수요에 맞게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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