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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마르코스 일가, 36년 만에 필리핀 권좌 복귀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5.10 14:26

수정 2022.05.10 14:26

지난 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이 필리핀 국기를 흔들며 마지막 대선 선거운동을 마치고 있다.AP뉴시스
지난 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이 필리핀 국기를 흔들며 마지막 대선 선거운동을 마치고 있다.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필리핀에서 약 36년 전 축출된 독재자의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벌써부터 부패와 족벌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음 달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을 이어 취임하는 새 대통령은 현재 두테르테 정권의 친중국 행보를 이어받을 전망이다.

10일 ABS-CBN 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대선 결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은 개표율 95.8% 기준으로 전체 6700만명 유권자 가운데 약 3048만표를 얻어 경쟁자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약 1452만표)을 압도했다. 유명 복싱 챔피언 출신으로 대권에 도전했던 매니 파퀴아오 후보는 350만표 안팎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날 현지 방송이 집계한 숫자는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를 부분적으로 취합한 비공식 집계다. 공식 집계는 좀 더 걸려야 나올 예정이며 이달 말 의회의 인증을 거쳐서 확정된다. 7641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는 2016년 대선 당시 선거 이후 3주가 지나서야 공식 결과가 나왔다. 마르코스 주니어가 당선될 경우 오는 6월 30일에 두테르테의 뒤를 이어 6년 단임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로브레도는 10일 연설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국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향후 분열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독재로 악명 높은 마르코스 일가는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장남 마르코스 주니어의 당선으로 36년 만에 필리핀 마닐라의 말라카냥궁(대통령 관저)에 복귀하게 됐다.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 피플파워 혁명으로 축출되기 전까지 21년 동안 필리핀을 철권통치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100억달러(약 12조775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멜다 마르코스는 3000켤레가 넘는 구두를 사 모은 것으로 드러나 ‘사치의 여왕’으로 알려졌다. 마르코스 본인은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다 숨졌으며 이멜다와 큰아들 마르코스 주니어는 1991년에 필리핀에 돌아와 잃었던 재산과 권력을 다시 쌓기 시작했다.

다국적 정치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피터 멈포드 동남아시아 대표는 마르코스 주니어가 높은 지지율을 얻어 대통령 임기를 강력하게 시작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다만 필리핀의 고질적인 족벌 정치와 부정부패가 이번 선거로 더욱 심해질 수 있다며 “마르코스 주니어가 앞으로 해외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조치를 내놓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평했다. 이어 “그가 만약 친인척과 지인들을 요직에 앉힌다면, 투자자들의 우려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선거로 인해 그동안 마르코스 일가의 부정부패를 조사했던 필리핀 바른정부위원회(PCGG)의 인사권은 마르코스 일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일부 외신들은 마르코스 일가가 과거 부정축재한 재산을 전부 되찾으려 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개표 당일 약 400명의 대학생들은 선관위 앞에 모여 마르코스 주니어가 공무원으로 재직 당시 탈세 혐의를 지적하며 출마 자격 자체가 없었다고 시위했다.

일단 전문가들은 마르코스 주니어의 정부가 두테르테 정부의 노선을 상당 부분 이어받는다고 내다봤다. 이번 대선과 함께 치러진 부통령 선거에서는 두테르테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이 3066만9569표를 받아 승리했다. 다국적 시장조사업체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알렉스 홈스 신흥 아시아 시장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마르코스 주니어가 세부적인 공약을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국가 통합 및 일자리 창출과 경제 위기 극복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경제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홈스는 “그가 하고자 열망하는 것은 전임 두테르테의 사회기반시설 프로그램을 재개하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필리핀 국민들이 사회기반시설 개선으로 혜택을 볼 것이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주니어의 지지자들은 선거 기간 동안 사망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독재를 했어도 여러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해 국가 번영을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홈스는 마르코스 주니어가 두테르테 정부의 친중국 노선을 이어간다고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마르코스 주니어가 기존 두테르테 진영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동시에 마르코스 주니어가 약속한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위해서도 중국 자금 유치가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 마르코스 주니어는 선거 전 인터뷰에서 미국 없이 중국과 직접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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