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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아들' 박관현 서거 40주기, 아직도 요원한 명예회복

뉴시스

입력 2022.05.15 06:05

수정 2022.05.15 06:05

기사내용 요약
5·18직전 사흘 간 '계엄 해제·신군부 집권 반대' 대중 연설 주도
"박 열사 육성은 시민 간 '민주주의 지켜야 한다' 공감대 확산"
현행법상 '재심 불가'…특별법 개정안도 형평성 논란에 '발목'

[광주=뉴시스] 1980년 5월 민족민주화 대성회에서 연설하는 박관현 열사. 2022.05.14. (사진=관현 장학재단 제공)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 1980년 5월 민족민주화 대성회에서 연설하는 박관현 열사. 2022.05.14. (사진=관현 장학재단 제공)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전국의 노동자, 농민과 지성인, 학생의 결집된 힘으로 싸워 나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 땅의 민주 회복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올해 박관현 열사 서거 40주기를 맞은 가운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족민주화성회를 이끌며 광주 시민들을 결집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고조시킨 박 열사의 삶이 재조명 받고 있다.

격동의 시기 민주화운동 선봉에 섰던 박 열사는 그러나 과거 유죄를 선고 받은 바 있지만 현행법상 재심은 받을 수 없어 수 십 년 째 명예회복이 되지 못하고 있다.

1953년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서 5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박 열사는 전남대 법대를 차석으로 입학, 법조인의 꿈을 키웠다. 1978년 서구 광천동 광주공단에서 하루 14~15시간을 일하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두 달 간 조사하고, 야학에서 노동자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 힘썼다.

이 시기 전국의 대학가는 10·26 사태 이후 유신 체제가 붕괴, '서울의 봄'이 찾아오면서 민주화·학생 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다.


1980년 4월 전남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박 열사는 '어용교수 퇴진' 등 학내 자율화를 외쳤다. 신군부의 재집권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학생회를 정비·개편해 같은 해 5월 8일 교내에서 민족민주화성회를 열었다.

이어 같은달 14일부터는 교내를 벗어나 광주 시내와 옛 전남도청 앞으로 진출하며 범시민 성격의 성회를 이어갔다. 운집한 군중 앞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도 낭독했다.

박 열사는 "자유가 있고 평등이 있는 이 나라에서 노예와 같이 굴종하며 얽매여 살아야 하는 우리 국민이 이젠 민주화 시대를 맞이해 너 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동참해야 한다"며 민주주의 수호를 피력했다.

박 열사는 경찰과 협의를 거쳐 교통질서를 유지, 비폭력 횃불대행진을 이끌며 시민들 사이에서 '광주의 아들'로 부상한다.

사흘 간의 성회는 광주시민들 사이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5·18민주화운동 당시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계엄군에 맞서게 되는 단초가 됐다.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 기자이자 박 열사의 육성 연설 녹음본을 공개한 조규백씨는 "박 열사는 군중들을 대상으로 신군부 의 권력찬탈에 맞서야 하는 이유를 간결하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다"며 "이는 시민들 사이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를 샘솟게 했다"고 회상했다.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강화하고, 학교에 계엄군을 배치한다.

수배명단에 오른 박 열사는 검거를 피해 전남 여수, 서울 막노동 현장과 공장을 전전하며 은신했지만 2년 여 만에 수사당국에 붙잡혀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박 열사는 교도소 내에서도 거짓진술 요구와 고문 등 인권 유린을 목도하면서 '재소자 처우 개선'과 '5·18 진상 규명'을 외치며 50여 일 간 단식농성을 이어갔다. 극심한 고문과 단식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해 1982년 10월12일 만 29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민주화 선봉에 선 박 열사는 4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현행법상 유죄를 벗지 못하고 있다.

박 열사의 경우 과거 비상계엄 해제, 어용교수 퇴진, 언론자유 보장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어 내란 중요임무종사와 계엄법 위반 혐의로 1982년 9월 27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유족 측은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청구했으나 2013년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박 열사가 항소 도중 숨져 공소 기각, 원심 효력이 상실돼 현행법상 재심 청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 중 숨진 경우도 특별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5·18 특별법 개정안 등이 발의되면서 한 가닥 희망이 생겼지만 이마저도 형평성 문제로 국회에서 계류하다 2016년 폐기된 상태다.


관현장학재단 최영준 이사장은 "재심 청구를 위해 여러차례 법적 검토를 거쳤으나, 현행법상 어렵다는 결론이 나 안타깝다"며 "대신 박 열사의 정신을 미래세대에 계승하기 위한 향후 역할과 여러 콘텐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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