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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년 만에 청와대 제치고 집무실 된 용산…진정한 명당될까[부동산백서]

뉴스1

입력 2022.05.15 08:00

수정 2022.05.15 08:00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국방부 청사 앞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들이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2022.5.9/뉴스1 © News1 인수위사진기자단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국방부 청사 앞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들이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2022.5.9/뉴스1 © News1 인수위사진기자단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열린 '청와대 국민개방 기념행사'에서 시민들이 출입문에 장식된 봉황 문양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2.5.11/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열린 '청와대 국민개방 기념행사'에서 시민들이 출입문에 장식된 봉황 문양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2.5.11/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금준혁 기자 = 윤석열 정부가 10일 출범하며 용산 시대가 열렸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고 집무실을 일명 '용와대'로 옮겼기 때문인데요. 국민들은 개방된 청와대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상황입니다.


한편으로는 왜 종로에서 용산이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국민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통팔달의 지역이라는 이점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종로가 한반도에서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면 궁금증도 생길 법한데요. 그렇다면 한반도의 역사에서 용산 땅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고려 '집무실' 후보에서 탈락한 용산, 교통 요충지·군사기지 역할

용산이 '집무실 이전'으로 주목받은 시기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용산(龍山)은 대체로 왕과 관련된 지역에 붙을 수 있는 지명이지만 현 서울의 용산이 주목을 받은 시점은 고려시대입니다.

공교롭게도 용산은 종로 청와대 터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고려 숙종이 남경(서울)으로의 천도계획을 세우며 물망에 뒀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용산입니다.

고려사 숙종세가에 따르면 1101년 10월8일에 조정대신인 최사추 등을 보내 노원역(동대문 밖), 해촌처(도봉산 아래), 용산처(용산)를 조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정대신들은 "용산의 산과 물의 흐름이 적합하지 않다(龍山等處審視山水不合)"며 "삼각산 면악 남쪽 산과 물의 형세가 부합하다(三角山面獄之南山形水勢符合)"고 보고했습니다. 당시 풍수지리설이 유행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용산이 길지라고 판단하지 않았던 셈이지요.

뒷이야기는 아시다시피 현재의 청와대 터가 낙점됐으나 숙종이 1105년에 숨을 거두며 천도가 무산됐습니다.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용산은 현재처럼 주요 교통로로 활약했으나 도읍의 중심지로 활용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용산 지역에 한성과 삼남지방을 잇는 청파역(역참)이 있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나루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조선 시대에도 청파역과 이태원, 노량진·서빙고나루터·한강진이 있었다는 점에서 용산이 주요 교통로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교통로라는 이점은 근현대에 와서는 용산이 주요 열강의 세력다툼 무대이자 식민통치 군사기지로 전락하는 주요한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요.

원효로 방면의 구용산은 조선 말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곳이며 한강로변의 신용산은 훗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의 식민통치 군사기지가 들어선 곳입니다. 도성과 가까워 쉽게 압박이 가능하고 수로를 통해 인천과 연결이 편하다는 이유로 수난을 겪은 것이지요.

일제가 패망하며 자연스레 미군정이 들어섰고 2017년까지 주한미군이 주둔했습니다.

◇국민 소통 유리한 곳이 진정한 '길지'…美 백악관·英 다우닝가 따라갈까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부터 용산으로 이전을 계획한 것은 아닙니다. 대선 과정에서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당선 이후 현실적인 제약으로 선회했습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는 광화문 이전이 시민들에게 초래하는 불편이 심각하다는 이유에서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다고 설명했습니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점을 봐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었지요.

또 인수위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풍수지리설에는 선을 그었습니다. 미국의 백악관, 영국의 다우닝가 10번지처럼 업무공간이 밀집해있고 시민과 접점이 마련된 집무실을 만든다는 것이 인수위의 구상입니다.

풍수지리상 길지라는 주장은 여러 전문가를 통해 나온 바가 있기는 합니다. 풍수지리 전문가인 김현회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는 국민 소통에 유리한 용산이 풍수지리적으로 이점이 있다고 해석합니다.

김 교수는 "풍수지리는 시대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며 "고려·조선시대에는 산이 있는 것이 전쟁에서 유리했으나 지금은 물이 있는 넓은 곳으로 나오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쉽게 말해 풍수지리는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지키기에 수월한 폐쇄적인 공간보다 소통이 유리한 트인 공간이 현대의 길지라는 풀이입니다.

결국 어떠한 관점에서든 집무실의 역할 중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용산 집무실이 '국민 소통'으로 이름난 명당으로 거듭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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