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넷플릭스가 기간통신사업자였다고?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5.24 18:41

수정 2022.05.24 18:41

[이구순의 느린 걸음] 넷플릭스가 기간통신사업자였다고?
"넷플릭스는 OCA(Open connect alliance·임시저장서버)를 통해 통신망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로, SK브로드밴드와 통신사 간 대등한 지위에서 통신망을 접속하고 있다." 인터넷동영상서비스 사업자 넷플릭스가 스스로 기간통신사업자라고 지위를 규정했다. 세계 최고 품질의 한국 인터넷망을 공짜로 쓰겠다며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통신망 사용료를 낼 이유가 없다"며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패소한 뒤 2심을 진행 중인데, 넷플릭스가 2심 전략으로 선택한 게 무정산(Bill&Keep)인 모양이다. 쉬운 말로 '퉁치자'는 말인데,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주고받을 비용이 엇비슷하니 서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관행을 따르자는 게 법정에서 내놓은 넷플릭스의 입장이다.

기업들이 서로 비용을 '퉁치는' 일은 규제 당국이 꽤 깐깐하게 관리하는 영역이다.
비용을 '퉁치는' 과정에서 세금탈루나 불법자금 운용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산업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무정산 가능한 영역을 정해놨다.

우선 통신망을 구축해 놓은 사업자끼리만 대가를 퉁칠 수 있다. 그다음 조건은 당사자 간 협상이다. 서로 주고받을 돈이 엇비슷하다는 것을 당사자 간에 우선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률 내용을 해석해보면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통신망 비용을 퉁칠 수 있는 자격이 안된다. 백번 양보해서 기간통신사업자라고 하더라도 넷플릭스는 일방적으로 트래픽을 전송하고 있어 퉁칠 수 있는 기본적인 트래픽 균형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퉁칠 수 있는 자격이 안된다. 한국 법에는 통신망을 연결하는 것에만 접속 비용을 퉁칠 수 있게 규정해 놨다. 통신망을 구축하려면 정부에 기간통신사업자로 등록해야 하는데, 그동안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기간통신사업자로 등록을 마쳤다는 공식 기록을 보지 못했다.

결국 통신망 사용료를 퉁치겠다는 결론을 맞추기 위해 넷플릭스가 한국 법정에서 정부에 등록하지도 않은 기간통신사업자 패를 들고 나온 것 아닌가 따져볼 일이다. 게다가 한국 법에는 개념조차 없는 '송신 ISP'라는 낯선 개념을 동원해 보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기간통신사업자 자격 조건을 얻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일단 외국인이 대주주인 법인은 한국에서 기간통신사업을 할 수 없다. 외국인 지분이 49%를 넘어도 안된다.
또 실제 통신망을 구축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통신망인지도 정부가 일일이 따져본다. 그런 뒤에라야 정부에 등록 절차를 밟아 기간통신사업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넷플릭스가 한국 통신망에 대해 비용을 퉁치자고 요청하려면, 한국 법에 맞춰 정식으로 기간통신사업자 등록 먼저 하고, 상대방 회사를 설득해 협상을 통해 무정산을 주장하는 게 순서 아닐까 싶다.

cafe9@fnnews.com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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