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투표 후 냉면 먹기로 했는데"…故 정동년 유가족 '오열'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6월1일 지방선거에 어머니·아버지와 손잡고 투표를 하고 냉면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31일 오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은 훌쩍임과 흐느낌, 울부짖는 소리만 가득했다.
'오월 사형수' 고(故)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영결식에 참석한 유가족과 지인, 시민들은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영결식은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헌화와 민중의례로 시작했다. 걸어온 길 보고에 이어 지선스님, 황일봉 행사위원장,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김정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가 조사를 낭독했다. 박몽구 시인의 조시, 김원중과 광주 음악인들의 조가가 울려퍼졌다.
영결식 마지막 순서로 유가족 대표인 장남 정재헌씨가 무대에 올랐다. 정씨는 "아버지는 저에게 태산같은 분이셨다"며 "하지만 저의 딸인 손녀에게는 항상 웃는 모습이어서 손녀는 '항상 할아버지는 천사같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저에게는 되게 거대하고 어려운 존재였는데 손녀딸에게는 천사였던 것"이라며 "손녀딸을 보며 웃는 모습이 제 기억에 남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했다.
정씨는 "6·1지방선거 투표를 마치고 어머니, 아버지와 손을 잡고 냉면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며 "6월7일에 손자가 군 입대를 하는데 아버지는 '경기도로 꼭 따라가고 싶다, 아들도 같이 갔으니 손자도 꼭 같이 가고싶다'고 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어김없이 또 찾아온 찬란하지만 이 가슴 아픈 오월에,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안고 앞으로 살아가게 됐다"며 "아들인 저조차도 마지막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황망하게 떠나 작별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또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까지도 5·18행사에 참여해 오월의 미래를 고민하시던 당신의 모습을 이젠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다. 더 함께하고 싶고, 함께해야 하는데…. 더 효도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을 잇지 못하자 객석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영결식장 무대 오른편에 마련된 가족석은 물론 추모객들도 "엉엉" 흐느껴 울었다.
고인의 아내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고개를 숙인 채 치맛자락을 붙들고 오열했다. 이씨 옆에 앉은 차남 정재철씨는 주먹으로 허벅지를 여러 차례 내려치며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친지들은 두 사람의 어깨를 다독이거나 손을 잡아주고 "아이고, 아이고" 통곡했다.
정재헌씨는 마지막으로 애써 미소지으며 "이제 오월을 사는 우리에게 남은 몫이 있다. 5·18의 진상규명과 오월정신의 확산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아버지의 유지를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반드시 꼭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유가족 인사에 앞서 조사를 낭독한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지난 27일 팔순 잔치에 초대받아 함께 점심을 먹고 막걸리를 마셨었는데 29일 세상을 떠나버렸단 말이냐"며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이냐. 소식을 듣자 가슴이 막히고 입이 닫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넋나간 기분일 뿐이다"고 허망함을 드러냈다.
이어 "힘든 일을 집행하느라 누적된 피로가 끝내 그대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생각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며 "광주가 낳은 위대한 민주투사요, 민중운동가인 그대를 지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다니 이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겠냐"고 애도했다.
고인은 지난 29일 오전 10시쯤 심장마비로 운명했다. 향년 79세다.
전남대 화학과 재학 중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1964년 6·3항쟁에 참여해 한일굴욕외교반대 투쟁을 이끌다가 구속됐다.
전남대 복학생 신분이던 1980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당시 김대중 총재의 자택에 방명록을 남겼다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군사재판에서는 '광주사태 주동자'로 지목돼 내란수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1982년 12월 성탄절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됐다.
출소 후에는 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과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공동의장, 5·18기념사업추진위원회 사무국장, 5·18기념재단 이사장, 광주 남구청장 등을 지냈다.
고인은 생애 마지막까지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지난 28일 열린 5·18기념재단의 문학상 시상식과 제42주년 5·18민중항쟁행상위원회의 마지막 행사 '오월의 밤'에 참석했다.
장례추진위원회는 영결식 종료 후 오후 2시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안장식을 진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