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줘요” 동심에 젖은 ‘어른이’가 온다

이주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6.04 10:00

수정 2022.06.04 10:00

띠부띠부씰 모으고, 피규어 동호회 즐기는 어른들
기업들 앞다퉈 키덜트 마케팅
포켓몬빵 부속품인 띠부띠부씰이 중고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사진은 연출된 이미지입니다.)
포켓몬빵 부속품인 띠부띠부씰이 중고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사진은 연출된 이미지입니다.)

[파이낸셜뉴스] # “포켓몬 띠부띠부씰(띠고 부치고 띠고 부치는 실의 약자) 9장 1만5000원에 팔았어요.” 직장인 김성미씨(이하 가명·30)에겐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학창 시절 사 먹던 포켓몬빵이 재출시되면서 ‘띠부띠부씰’에 다시 빠졌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캐릭터는 모아두고, 중복 캐릭터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묶어서 팔았다. 그는 “빵맛은 중요하지 않았다”며 “예전엔 포켓몬별로 스티커 앨범에 모았는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좋았다”고 전했다.

# 활동명 ‘제주 맥가이버’씨(53)는 오프라인 피규어 동호회를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로보트 태권 V 피규어’ 재발매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구매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피규어를 모은 지 15년. 그는 피규어 수집이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고 말했다.

중학교 시절 문방구에서 피규어를 샀다는 ‘제주 맥가이버’씨. “지금은 피규어가 훨씬 정교하고 다양해져서 즐길 거리가 많다”고 했다. 피규어 구매에 지출하는 금액은 월 평균 40만원 정도. 인기가 많은 상품은 1분 만에 품절되기 때문에 구매에 실패한 적도 많다. 그는 SNS에 피규어 제작기를 올리기도 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과 발매 소식 등을 주고 받는다.

활동명 ‘제주 맥가이버’씨가 피규어를 만들고 있다. /사진=제주 맥가제이버 제공
활동명 ‘제주 맥가이버’씨가 피규어를 만들고 있다. /사진=제주 맥가제이버 제공

■‘어른이’들을 위한 캐릭터 상품·공간 줄이어

어린이 시절의 감성에 다시 젖어든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키덜트 족’ 전성시대다. 키덜트(kidult)는 아이(kid)와 어른(adult)을 합친 단어로 어린이 같은 취향과 감성을 가진 어른을 말한다.

과거에는 키덜트 문화가 미성숙하고 철없는 성인들의 비주류 취미로 치부됐지만, 최근 2~3년 사이 주류 문화로 떠올랐다. 중앙대에서 문화콘텐츠 융합전공 강의를 하고 있는 이승우 교수는 키덜트 문화를 두고 “경직된 문화에서 벗어나 각자 좋아하는 취향이 존중되는 문화가 저변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통업계에선 캐릭터 등을 이용해 키덜트 족을 겨냥한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식음료 업계는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SPC삼립은 1998년 출시됐다가 단종된 포켓몬빵을 올해 2월 재출시했다. 포켓몬빵은 출시 40여 일 만에 판매량 1000만개를 돌파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포켓몬빵 열풍에 SPC삼립 주가도 움직였다. 지난 2월 3일 종가 기준 7만4500원이었던 SPC삼립 주가는 포켓몬빵 재출시일(2월 23일) 이후 꾸준히 상승하다 한때 9만원선까지 오른 바 있다.

이밖에 농심켈로그는 포켓몬 캐릭터를 활용한 시리얼, 하림은 포켓몬 홀로그램씰이 담긴 치즈핫도그 등 냉동간식을 출시하며 포켓몬 대란에 합류했다.

키덜트 족이 찾아갈 공간도 다양해지고 있다. 복합쇼핑몰 용산 아이파크몰은 키덜트 족의 성지다. 건담 프라모델 전문점 건담베이스, 애니메이션 짱구를 테마로 한 짱구 카페, 스튜디오 지브리의 캐릭터샵인 도토리숲 등 다양한 캐릭터 테마샵이 ‘어른이’들에게 인기다.

아이파크몰 관계자는 “이전에는 캐릭터 테마샵 등이 소수 마니아들만의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청년층 뿐만 아니라 연령대가 높은 세대까지도 방문자 폭이 넓어졌다”며 “앞으로도 키덜트 문화 사업을 활발하게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올해 어린이날 정식 개장한 강원도 춘천의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에도 어른들의 발걸음이 닿고 있다. 레고랜드 주요 타깃층은 만2세에서 12세 어린이와 가족들이다. 하지만 레고 자체가 마니아층이 많은 만큼 어른이들의 관심도 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레고랜드 관계자는 “키덜트 고객층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해당 고객들에게는 어려운 버전의 시리즈나 비싼 모델들을 구매해서 조립하는 경험이 많다는 점 등을 고려한 이벤트나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레고랜드의 대표 마스코트인 에이미와 마이크. /사진=레고랜드
레고랜드의 대표 마스코트인 에이미와 마이크. /사진=레고랜드

■“오픈런부터 제품 훼손까지” 문제도 속출

한편 과한 인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포켓몬빵은 품귀현상을 빚으며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선 개점시간 전부터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오픈런’이 벌어졌다. 중고 시장에서 일부 희귀 스티커는 5만 원이 넘는 가격에 재판매되고 있어 차익을 노리는 사람들도 몰렸기 때문이다. 일부 고객들이 희귀 스티커를 찾기 위해 구매 전 빵을 짓누르고 훼손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중고 플랫폼에서 거래되고 있는 띠부띠부씰. /사진=‘당근마켓’ 캡처
중고 플랫폼에서 거래되고 있는 띠부띠부씰. /사진=‘당근마켓’ 캡처

서울 강남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포켓몬빵 구매에 있어) 누가 먼저 왔냐는 문제로 고객들끼리 시비가 잦다. 직원들에게 항의를 하는 등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보통 A씨의 가게에 포켓몬빵은 하루 평균 2~3개 정도 들어온다. 반면 입고 30분 전에 대기하는 고객은 5명 이상이다.
그중에는 매일 방문하는 고객도 있다.

그는 “포켓몬빵이 고객들을 점포로 방문하게 만드는 기회요소가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너무 과열되어 점주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키덜트 문화는 힐링할 수 있는 대상을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대상에서 찾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며 “이때 소비자들이 재미로 즐기는 건 좋지만, 부속품을 얻기 위해 메인 제품을 과다하게 구매하는 등 행동은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조언했다.

zoom@fnnews.com 이주미 임수빈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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