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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록 전남지사 '재선' 성공…호남 대표 정치인 '반열'

김영록 더불어민주당 전라남도지사 후보가 1일 저녁 순천 선거사무소에서 개표를 지켜 보다 승리가 유력하자 꽃다발을 받고 미소 짓고 있다.(김영록 후보 선거사무소 제공) 2022.6.1/뉴스1 © News1 전원 기자
김영록 더불어민주당 전라남도지사 후보가 1일 저녁 순천 선거사무소에서 개표를 지켜 보다 승리가 유력하자 꽃다발을 받고 미소 짓고 있다.(김영록 후보 선거사무소 제공) 2022.6.1/뉴스1 © News1 전원 기자

(무안=뉴스1) 전원 기자 = 6·1 지방선거에서 김영록 더불어민주당 전남도지사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며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행정을 다양하게 경험한 정통 관료 출신인 그는 1955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부친의 병환과 대학입시를 앞두고 폐결핵을 앓는 등 어려운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해 건국대학교 행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7년 제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전남도청 사무관으로 일하다 이후 내무부를 거쳐 1994년 39세의 나이로 강진군수에 부임하고 이듬해는 고향인 완도에서 군수를 역임했다. 군수 시절 단 한명이 사는 섬마을까지 지역의 모든 마을을 방문하며 관선 마지막 군수로서 주민과 함께하는 군정을 펼친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97년 IMF외환위기 당시 전남도 경제통상국장으로 부도위기를 맞은 삼호중공업의 조업 정상화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부도난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조업을 정상화시켜 종업원 1만명에 이르는 세계 5위의 조선업체로 성장한 지금의 현대삼호중공업이 있게 한 주인공이다.

1997년 전남도 자치행정국장으로 재임할 때는 전국 최초로 신생아 수당을 도입했고, 2006년 전남도 행정부지사로 부임 당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유치하는 데 일조했다.

18대 국회 4년과 19대 국회 2년간은 농식품위와 농해수위 등에서 활동했다. 농어업분야의 다양한 경험과 경력은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되는 발판이 됐다.

20년 전 수준에 머물던 12만6000원대 쌀값을 16만8000원대로 회복시키고, 청탁금지법 가운데 농수산물 한도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또 조류인플루엔자(AI)에 대한 신속한 대처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우려를 덜었고, 무허가축사 적법화 문제 해결 등의 성과를 올렸다.

정치적으로 2014년 제 3기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19대 후반기 원구성과 6·4지방선거, 7·30재보궐선거, 세월호 특별법 제정까지 당내외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당의 중심을 잡는데 공헌했고, 2015년 문재인 당대표 시절 수석대변인직도 수행했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문재인 대통령을 도와 호남민심을 되돌리는데 기여했다. 지난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중앙선대위 조직본부장을 맡아 광주·전남 지지율을 80%까지 끌어올려 승리에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2018년 치열한 경선을 거쳐 민선 7기 전라남도지사로 당선된 이후, 현역 단체장으로서 도민제일주의와 현장행정을 바탕으로 불철주야 뛰었다.
이를 통해 7조원대였던 전남예산은 3년만에 11조원으로 늘었고, 1인당 개인소득도 전국 17위에서 10위로 우뚝 올라섰다.

시·도별 주민생활만족도 조사와 광역단체장 직무수행지지도 조사에서 30개월 가까이 1위를 달성했고, 지난해 정부합동평가 목표달성도에서는 전남도가 사상 첫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개교와 시난 해상풍력단지 시동, 여순특별법 제정, 한국섬진흥원 설립 등 전남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대형 국책사업을 대거 유치하는 등 전남성장동력 기반을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