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대전시장 당선인 이장우…‘예산통·해결사’ 별칭

뉴스1

입력 2022.06.02 10:07

수정 2022.06.02 10:07

이장우 국민의힘 대전시장 후보가 2일 대전 서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자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2022.6.2/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이장우 국민의힘 대전시장 후보가 2일 대전 서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자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2022.6.2/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대전=뉴스1) 김경훈 기자 = 이장우 대전시장 당선인(57)은 국회 보좌진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민선 4기 동구청장, 19·20대 재선 국회의원을 거쳐 제8회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에 올랐다.

충남 청양 시골 마을에서 농군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고교 시절 대전으로 유학을 와 중구 부사동 산1번지 보문산 자락의 6만원 짜리 월세방에서 홀로 자취생활을 하며 고등학교(대전고)를 졸업했다.

동네 주민들과 공동 우물을 함께 쓸 정도로 열악한 생활을 했지만, 역사소설가의 꿈을 키웠고, 대전대 행정학과에 입학해 1987년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민주항쟁의 선봉에 서는 등 대한민국 격변기를 건넜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늘 선·후배, 동료들과 소통·교류하며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의리의 정치인으로 통했다.

육군 병장 만기 전역 후 대학 은사들의 추천으로 평생의 정치적 스승이자 멘토인 이양희 전 국회의원(15·16대)과 인연을 맺으면서 비서관과 보좌관을 역임하며 정계에 입문한다.



이후 원내총무, 대변인 등을 보좌하며 3김 정치로 대변되는 중앙정치를 현장에서 경험했다. 그는 정치에 입문, ‘지공무사(至公無私)’를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공적인 일을 하면서 결코 사사로움이 없게 하겠다’는 뜻인데, 좌우명이 부끄럽지 않도록 매사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만 41세의 나이로 대전 최연소 민선 4기 동구청장으로 선출됐고, 2009년 만 49세 이하 전국 청년 시장·군수·구청장 모임인 ‘청목회’ 사무총장을 맡아 정파와 지역을 초월한 자치행정,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앞장서왔다.

지역 정당 바람의 높은 파고를 넘지 못해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2년 뒤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이어 4년 뒤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도 주민들의 부름을 다시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국회의원 시절 ‘국궁진력(鞠躬盡力)’을 좌우명으로 삼았는데, 대한민국 국민과 나라와 지역 발전을 위한 그의 염원이 담긴 문구다.

그는 동구청장과 국회의원 재직 시절 그 누구도 엄두 내지 못한 굵직굵직한 지역 현안들과 숙원사업들을 잇따라 해결하고, 역대급 국비 확보 기여 등으로 ‘예산통’, ‘해결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초선 국회의원 시절 1년 6개월간 끊임없는 노력 끝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홍도육교 지하화 사업은 대전 발전사에 한 획을 그은 역작 중 역작으로 평가된다.

7년째 지지부진했던 대전역 명품역사 증축 완공, 26년 더부살이 동부경찰서 신축 이전 등 현안 사업들을 관철시키는 협상과 타협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2009년부터 중단된 주거환경개선사업 재개를 위해 8년여간 지역사무소에서 주민, 정부, LH, 지자체 관계자들과 80여 차례에 걸친 간담회를 직접 주재한 것도 유명하다.

이 당선인은 영·호남 패권주의가 지배적인 중앙정치무대에서 대전 시민과 충청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력하는 대표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때로는 너무 강한 톤의 발언으로 곱지 않은 시선이나 따가운 눈총도 없지 않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오롯이 대전 시민, 충청 도민의 행복과 지역 발전을 위한 진심으로 여기고 있다.

이 당선인은 “위대한 대전시민의 선택에 감사드린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치인이 되도록 늘 매진하겠다.
민생을 꼼꼼히 챙기고 시민의 뜻이 항상 어디에 있는지 경청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