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

'AI선장'이 태평양 1만km 자율운항…'정기선의 꿈' 1년만에 절반 달성

아비커스의 하이나스 2.0 시스템을 살펴보는 선장과 항해사의 모습. (HD현대 제공)© 뉴스1
아비커스의 하이나스 2.0 시스템을 살펴보는 선장과 항해사의 모습. (HD현대 제공)© 뉴스1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2' 현장에서 개최된 현대중공업그룹 프레스컨퍼런스에서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가 그룹의 미래비전인 'Future Builder'를 소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뉴스1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2' 현장에서 개최된 현대중공업그룹 프레스컨퍼런스에서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가 그룹의 미래비전인 'Future Builder'를 소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뉴스1

(서울=뉴스1) 김민성 기자 =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배를 만들겠습니다."(정기선 HD현대 사장)

지난달 1일, 기장과 아비커스 연구원 등 30명만 태운 길이 300m, 폭 46.4m, 높이 26.5m LNG운반선인 '프리즘 커리지'호가 미국 남부 멕시코만 연안의 프리포트(Freeport)에서 출항했다.

파나마 운하를 지나 드넓은 태평양을 거쳐 2일 충남 보령의 LNG 터미널에 도착하는 2만km 여정의 절반인 1만km는 'AI 선장님'이 진두지휘했다.

33일간 100여 차례, 즉 하루에 3번꼴로 타 선박과 충돌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2년 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AI 선장님'의 운항능력 덕에 무사히 입항할 수 있었다.

자율운항으로 100km 남짓한 인근 연안만 오가는 경쟁사 수준을 넘어 대양을 건넌 세계 최초 사례다.

◇2020년 업계 최초 자율운항 시스템 상용화 '첫 발'…사내벤처 신사업 '핵심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율운항을 통한 태평양 횡단의 첫 발판은 202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룹이 KAIST와 공동 개발한 항해지원시스템 '하이나스'를 25만톤(t)급 벌크선에 탑재했다. 조선업계 최초로 선박의 자율운항시스템 상용화에 첫 발을 뗀 것이다.

'하이나스'는 선박의 뇌와 눈이다. 인지, 판단 기능에 그쳤던 하이나스는 카메라, AI 센서로 장애물을 인식하고 조종·제어까지 할 수 있는 단계로 진화했다. 바로 '하이나스 2.0'은 태평양 횡단에 성공한 '프리즘 커리지'호에 적용된 기술이다.

이 배를 띄운 곳은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 사내벤처이자 선박 자율운항 기업인 아비커스(Avikus)다. '오너 3세'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똑똑한 성장'을 외치며 2020년 12월 사내벤처 1호로 출범시킨 곳이다.

지주사인 HD현대가 60억원을 출자해 100% 자회사로 편입했고 유상증자로 80억원을 추가 투입하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정기선 사장은 아비커스의 기술을 두고 '노벨티'(novelty·진기한)하다고 할 만큼 애착이 있는 그룹 신사업의 '핵심'이다.

◇1년 전 크루스 선박으로 10㎞ 완전자율운항 성공…'완전' 자율운항 회의론도

아비커스는 6개월 뒤 2021년 6월에 경북 포항 운하에서 12인승 크루즈 선박을 사람 개입 없이 완전 자율운항하는 데 성공했다. 포항 운하의 총 길이는 10㎞로 길지 않지만 수로의 평균 폭은 10m에 불과해 사람이 운항하기에도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당시 직원들이 두 달간 포항에 내려가 살다시피하며 현지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이룬 성과다.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기술을 통해 대양을 횡단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 때다. 올해 4월엔 가상 공간에서 자율운항 여객선을 시운전하는 데 성공하며 대양 횡단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자율운항 시스템 상용화 이후 2년, 대양 횡단이라는 목표를 세운 지 1년 만에 뚜렷한 강자가 없는 자율운항 시장에서 '대양 횡단 성공'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앞으로 세계 주요 선사들도 아비커스의 기술력에 더욱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른바 '완전' 자율운항 선박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국제해사기구(IMO) 자율운항선박 등급(1~4단계)을 보면 '완전 자율운항'은 선원이 타지 않고도 원격 제어 필요 없이 스스로 돌발 상황을 제어하는 수준(4단계)이다.


그러나 인명 구조 등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AI가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국제해사기구 협약에 따르면 바다에 사람이 빠지거나 주변에 조난 사고가 발생하면 반드시 구조에 나서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마지막 퍼즐은 '돌발상황까지도 인간의 제어없이 AI가 처리할 수 있느냐'인데 자율주행차 이상의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1만㎞의 장거리를 자율운항한 것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