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럽

30년 만에 찾아온 '新 냉전'…러·나토 '완충지대' 축소

뉴스1

입력 2022.06.03 06:02

수정 2022.06.03 06:02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지난달 15일 공식화된 이래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 개최 나토 정상회의를 전후로 일반 동의 절차가 이뤄질 예정이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지난달 15일 공식화된 이래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 개최 나토 정상회의를 전후로 일반 동의 절차가 이뤄질 예정이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추틴 러시아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추틴 러시아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안보 지형에서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1991년 말 소련 붕괴로 잠재워진 '냉전'의 부활 조짐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중심 자본주의와 소련 중심 공산 진영 간 대립과 한국·베트남 등에서의 대리 전쟁으로 대표됐던 냉전 시대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세계 평화)' 도래와 함께 막을 내린 듯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우크라이나를 돕는 미국과 유럽 및 그 동맹·파트너간 서방 자유주의 동맹과,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며 사실상 러시아 편들기를 하는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되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건 이번 전쟁의 승자를 가리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우선 표면적으로 가장 큰 피해국은 영토가 직접적인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다. 서방의 지원과 연대, 유럽연합(EU) 가입 가능성, 국내외에 천명한 자강·항전 의지 등을 얻었지만, 무고한 민간인 피해나 초토화된 일부 도시의 참상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분명 아니다. 전쟁 속에서도 키이우를 지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부 지도부의 높아진 위신에도, 끝내 전쟁을 막지 못한 외교적 과오를 덮긴 역부족이란 지적이 공존한다.

러시아는 어떨까. 러시아가 이번 전쟁을 치르기 전부터 밝혀온 목표는 '나토의 원상 복귀'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불거지던 작년 말 외교부 공식 서한을 통해 안전보장을 서방에 제안했다.

소련 붕괴 이후인 1997년 서방이 나토에 약속한 '동진(동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 금지'를 법적 구속력 있는 확답으로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미 합류한 나라의 가입을 무를 순 없더라도, 적어도 그런 나라들에 러시아를 겨냥하며 배치한 미사일과 군 병력을 철수하고, 추가 동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푸틴 대통령은 원했었다.

그러나 전쟁 일촉즉발의 위기에서도 이를 거절해온 미국이 이제와서 협상에 응해줄 여지는 없어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월 31일자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만약 러시아가 그들의 행동에 대해 무거운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일국의 영토를 점령하고 정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다른 침략자들에게 보낼 것"이라며 "그것은 다른 평화로운 민주국가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고, 규칙 기반 국제 질서의 종말을 의미, 전 세계에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또 다른 침략의 문을 열 수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이번 전쟁의 종식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외교와 협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미국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휴전을 위한) 영토 할양을 압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발언은, 최근 유럽 외교가에서 나오는 '이제 협상할 때'라는 목소리와 다소 배치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등 유럽 정상들은 최근 푸틴 대통령과 잇달아 통화해 종전을 설득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는 양보와 협상 재개를 종용 내지 압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를 2월 24일 전으로 되돌린 뒤에야 러시아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으로부터 안보 협상은 수락받지 못한 채, 접경국 핀란드와 그 이웃 스웨덴이라는 중요한 발트해 완충지대를 상실하게 생겼다.

핀란드의 중립국 역사는 70여 년이고, 스웨덴은 무려 약 200년간 군사적 중립을 지켜왔다. 그런 두 나라가 이번 전쟁으로 궤도를 수정,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 개최 나토 정상회의를 전후로 나토 가입 일반 동의 절차를 받아낼 예정이다.

나토 창립 멤버이지만 유럽연합(EU) 공동안보장위정책(CSDP)에는 유일하게 불참을 유지해온 덴마크 역시 북유럽 국방 협력 심화를 위해 CSDP에 합류할 전망이다.

"푸틴이 자유·독립국을 침공하고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면, 우리는 서로 더욱 가까워진다"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의 발언은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가 받아들게 될 청구서의 가장 큰 손실을 시사한다.

독·소 전쟁 패퇴와 그에 따른 2차 대전 패배로 군사적 하락의 길을 걸어온 독일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방위비를 대폭 늘리며 재무장을 다짐하고 있다.

70년 전 소련의 '이기고도 진 전쟁'의 악몽이 재현될 조짐을 암시하는 사건들이다.

유럽 국가들은 대(對)러시아 제재 지속으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와, 그간 높은 대러 에너지 의존도의 대가를 치르며 신음하고 있다. 고유가에 더해 가중하는 식량난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것은 물론, 최하단에 위치한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의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은 손익계산이 다소 복잡하다. 이번 전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 증명됐지만, 러시아라는 '공공의 적'을 대적하기 위한 서방 동맹은 더 굳건해졌다.

나토의 존재를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진영과 러시아 간 대결구도로 정의한다면, 새로이 합류하는 국가들로 인해 '우리 편'이 늘어난 점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처럼 나토가 단합한 계기에 대중국 견제 역시 서방 동맹 차원의 정책에 편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나토의 장기적인 전략 개념에 중국의 위협이 처음으로 포함된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이 새로운 전략 개념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될 예정이다.

나토는 본래 냉전 시기 소련을 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창설된 다자간 군사 동맹이었는데, 어느덧 중·러를 대적하는 동맹체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중 전략 경쟁에서 애써 중립을 지켜오던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 이 같은 전략에 빨려들어가게 됐다.

다만 워싱턴 소재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위한 퀸시 연구소'의 아나톨 리에벤 선임 펠로우는 미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 기고문에서 "2차 대전 이후 소련에 대한 미국의 봉쇄 정책은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그 전략의 지나치게 열성적인 프레임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끔찍한 고통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교훈들은 러시아의 침공에 직면한 우크라이나를 돕는 미국을 비난하지 않지만, (미국이 지금 하고 있듯)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타협된 평화를 배제하는 것에는 강하게 반대한다"며 "더 나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또 다른 군사화된 글로벌 십자군의 시작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