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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건설 중대재해 예방 갈 길이 멀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6.07 18:32

수정 2022.06.07 18:32

[서초포럼] 건설 중대재해 예방 갈 길이 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동향보고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사고 사망자는 458명으로 전체 산업 사고 사망자의 50.1%를 차지했다. 근로자 1만명당 사고 사망자는 건설업이 2.0인으로 전체 산업 평균치 0.46인보다 4.35배나 높다. 건설산업이 안전해야 전체 산업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안전 선진국인 영국의 건설산업 사고 사망자와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25배나 많을 정도로 우리는 안전 후진국이다.

1970년 와우아파트, 1994년 성수대교, 1995년 삼풍아파트 붕괴사고를 필두로 최근의 광주광역시 재개발 현장 붕괴사고에 이르기까지 건설 현장의 대형 사고는 수많은 재발방지 대책과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건설분야의 안전과 관련된 법령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건설기술진흥법 그리고 지난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등 3가지 법이 있다.
각 법마다 중대재해에 대한 정의가 다르고, 처벌 수위와 사업주 및 경영자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내용도 달라서 관련기업과 현장에서는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입건된 사고만 40곳에 육박하는데 제대로 처벌받은 사례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어 처벌의지가 있는지 국민들은 의심하고 있다.

건설분야 안전이 이토록 취약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질적인 단가 후려치기 하청구조가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건설분야의 하도급은 분업과 전문화의 원리에 따라 특정 기술을 가진 하도급업체가 원도급자와 협력,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을 수주한 원청업체가 하청을 줄 때 가장 싸고 가장 빠르게 공사를 끝낼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기 때문에 하청업체는 안전관리에 시간과 비용을 쓰기 어렵다. 공사를 빨리 끝내려면 콘크리트가 채 굳기도 전에 위층을 시공해야 하고, 결국에는 붕괴사고로 이어진다.

하도급 문제는 널리 알려진 고질적 병폐이지만 건설분야의 현장 전문가들은 부실도면을 건설분야 중대재해의 큰 원인으로 꼽는다. 설계도면 중에서, 특히 구조도면의 부실이 심각한 수준이다. 구조기술사는 계산만 하고 그 결과를 설계사무소에서 받아 구조도면을 그리는 관행 때문에 시공현장에서 쓰기 어려운 함량미달의 구조설계 도면이 만연하고 있다. 공사비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낮은 설계비용, 구조전문가가 그리지 않은 구조도면, 현장에서의 잦은 설계변경과 짧은 공사기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건설현장의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하도급과 도면부실 이 두 가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강력하게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건설분야의 중대재해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듯이 건설현장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꿔야 안전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건설 시공단계의 사고예방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시공단계의 사고예방은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지도하고 감독하면 된다.
원청업체의 경영진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도 시행되고 있다. 이제는 시공 이전에 사업준비, 계획 및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을 철저하게 고려하는 제도보완이 필요하다.
계획 및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요 참여자의 안전관리 역할과 책임을 규정한 선진국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류중석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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