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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사제' 시대 열린다…"방만경영 감시" vs "노조입김 세져"

뉴스1

입력 2022.06.13 05:30

수정 2022.06.13 09:09

'노동이사제' 시대 열린다…"방만경영 감시" vs "노조입김 세져"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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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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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전력거래소, 한전KDN,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한국농어촌공사 등이 주요 공기업·준정부기관이 입주해 있는 나주혁신도시 모습. (나주시 제공) /뉴스1DB © News1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한전KDN,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한국농어촌공사 등이 주요 공기업·준정부기관이 입주해 있는 나주혁신도시 모습. (나주시 제공) /뉴스1DB © News1

(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 = 8월부터 130개 공공기관에 '노동이사'가 생긴다. 노동자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만큼 방만경영 감시 기능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와 함께 지나친 경영 간섭으로 주주이익을 침해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30개 공공기관은 8월4일 노동이사제 시행에 따라 노동이사(비상임) 1명을 반드시 뽑아야 한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경영의결 과정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시행 대상 기관은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한국마사회와 같은 공기업 36곳과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을 비롯한 준정부기관 94곳 등 130곳이다.



노동이사는 과반수 노조를 두고 있는 기관의 경우 노조 대표 추천으로, 과반 노조가 없을 땐 근로자 투표를 거쳐 과반 동의를 얻어 선임하도록 했다. 공공기관 130곳 중 115곳이 과반 노조를 갖고 있어 대부분 노조 대표의 추천으로 노동이사가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자격은 3년 이상 해당기관에 재직한 노동자로, 임기는 2년으로 하되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기재부는 이런 세부 규정을 담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8월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서울시에선 2016년 도입해 효과 검증…尹 공약 채택

노동이사제는 말 그대로 노동자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니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면서 노동자 이익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제대로 운영이 되면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감시 강화로 방만 경영을 막고 기관 투명성을 높이며 조직 내 비리도 예방할 수 있다.

노동계의 숙원이던 노동이사제는 노·사·정 협의체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미 2020년 말에 사회적 합의를 끌어낸 정책이며 2016년 서울시가 산하 투자·출자기관에 최초 도입한 이후 이미 10개 광역단체가 시행 중인 제도다.

한국노동연구원 설문조사에서 서울시 산하기관은 노동이사제 도입 이후 경영 투명성, 공익성, 이사회 운영의 민주성 등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응답해 효과를 검증하기도 했다.

이런 긍정 작용에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에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해 노동이사제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해외 사례를 봐도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도입했고, 독일의 경우 기업 규모에 따라 이사회의 최고 절반까지를 노동자 대표로 채우도록 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우리사회가 노사대립을 지양하고 사회적대화를 통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며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과 사회적가치 실현이라는 진짜 공공기관 개혁을 견인할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생산성 악화·주주이익 침해·노사 갈등 확대 우려

반면 노동이사제 시행이 공공기관 경영 구조개선에 크게 일조하지는 못할 것이란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노동이사 1명의 발언·의결권이 이사회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불필요한 경영 간섭에 이사회 의사결정을 지연시켜 경영 효율성과 기업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 없이 민간 기업으로 이 제도가 확산했을 경우 혼란만 키울 것이란 재계의 걱정 또한 만만치 않다. 최악에는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감소하며 국내 기업이 해외로 모두 빠져나가는 등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지적이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사업구조조정, 해외사업 진출 등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의 이익이 지금보다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노사 갈등이 심하고 회사 이익보다는 노조 이익을 대변하며 결국 노동이사를 노조 지도부의 출세 수단으로 삼거나 노사 담합만 확대될 것이라는 이유다.

당장 노조조직률이 70% 이상에 달하는 공공부문 노조는 이번 노동이사제 시행으로 그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대립적인 노사관계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이사회가 노사 갈등의 장으로 변질할 뿐 아니라 효율적 의사결정의 지연, 정보 유출 등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입 결정된 이상 논쟁 끝내고 성공 안착 노력 주문

노동이사제 도입을 두고 찬반 의견이 뚜렷한 만큼 공공기관 안팎에서도 기대와 걱정이 공존한다.

윤석열 정부가 대대적인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이 이런 개혁 정책에 제동을 걸지, 일조를 할지도 관심이다.

제도 시행은 이미 정해졌으니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안착 노력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노동이사를 뽑는 과정에서 전문성 검증 미흡 등 선임절차 부실로 부적격자 또는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는 만큼 보완책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는 견해 등이 공공기관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한 공기업 직원은 "부적격자 임명, 지나친 경영간섭, 의결지연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제도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며 "이를테면 중요한 경영판단에선 노동이사의 의결권 제한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 한 직원은 "아직 시행도 안 한 노동이사제에 대한 부작용을 걱정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순기능을 더 끌어낼지 고민해야 하는 만큼 도입 취지, 역할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노동이사 선출 과정의 투명성, 참여하는 노조원에 필요한 교육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공기관 운영을 총괄 지휘하는 기재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노동이사제 도입 이전 단계인 노동이사참관제를 여러 기관에서 운영하면서 발생 가능한 문제를 꾸준히 보완했다"며 "제대로 된 기능을 하도록 운영 과정에서 신속한 보완책 마련 등 제도안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