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승준 기자 = 누리호의 성공이 빛나는 것은 '한국의 독자 개발'의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독자 개발의 장점이 특히 드러난 것은 문제 해결이었다.
발사체는 몇십만개의 부품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발사체 연구원들은 쉽게 '장담'을 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생기면 개선해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호는 첫 발사 시도에서 성공까지 41개월, 누리호는 8개월이 걸렸다.
나로호는 2009년 8월 첫 발사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소프트웨어 문제로 연기, 1차 발사에 이르렀으나 페어링 미분리로 실패했다. 2010년 6월 2차 발사에서는 고도 70㎞에서 공중 폭발, 결국 2013년 1월30일 오후 4시에 이뤄진 3차 발사에서 위성을 올려놓는 임무에 성공했다.
누리호는 2021년 10월21일 첫 시도에서 고도 700㎞에 도달했지만, 위성모사체를 궤도에 올려놓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2022년 6월21일 오후 4시 발사 및 위성 궤도 진입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발사 시도와 보완, 그리고 성공까지 걸어오는 길에서 나로호와 누리호는 전혀 다른 과정을 겪었다. 이러한 차이의 첫 요인은 기술의 축적이다.
20일 나로우주센터에서 열린 '누리호 준비상황 브리핑'에서 오승협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추진기관개발부 부장은 "모든 연구원이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나로호 사업부터 참여한 경우가 많다"며 "(나로호가) 2번 실패, 3번째 성공하는 과정이 있었다. 1단 액체 엔진을 러시아에서 빌려와 기술적 접근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을 때 원인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경험과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1990년대의 고체 과학로켓 'KSR-Ⅰ'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발사체 기술을 축적해왔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1998년 고체 과학로켓 KSR-Ⅱ에 52억이 투자되는 등 발사체를 위한 한국의 꿈은 꾸준히 이어졌다.
또 기술의 축적을 바탕으로 한 '독자 개발' 역시 하나의 큰 요인이다.
2차 발사에서 고도 70㎞에서 폭발한 나로호를 두고, 한국 측과 러시아 측은 서로 맡은 부분이 문제였다고 원인 분석을 한다. 당시 1단은 러시아가, 2단은 한국이 개발했다. 2010년 공중 폭발 후 일어난 이 논쟁은 2011년까지 이어졌고, 결국 세번째 시도는 2013년에야 이뤄졌다.
또 러시아와의 협력이 이뤄지며 기술적 학습의 기회도 되었지만, 동시에 러시아와 소통과 조율을 통해야만 작업이 가능해 시간이 더 걸리는 점도 있었다.
반면, 누리호의 경우는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이 설계부터 제작, 운용까지 모두 수행했다. 그 덕분에 누리호 관리에 대한 모든 정보를 근거리에서 소통의 장벽 없이 얻을 수 있었다.
이 장점은 2차 발사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누리호는 15일 발사대에 올랐으나, 점검 과정에서 센서이상이 발견돼 도로 내려왔다. 당시 항우연에 따르면, 센서 이상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1단과 2단을 분리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었다. 만약 1단과 2단 사이에는 각종 부품과 화약류가 함께 있어 신중한 작업이 필요해 발사 장기 지연도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항우연 연구진들은 단 분리 없이 센서 교체를 하는 방법을 찾아내 21일 발사를 성사시켰다.
오승협 부장은 "누리호 같은 경우 1,2,3 단 모든 시스템을 독자 설계하고 시험 과정이 있기 때문에 문제 있으면 어떤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지 담당자들이 파악하고 있다"며 "1차 발사 때 문제도 그렇고 이번 문제도 원인 분석 과정에 있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오태석 과기정통부 1차관은 22일 KBS1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센서 고장이 발견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원인 파악하고 고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알기가 어려웠고, 예정일 내에 발사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며 "누리호가 설계부터 제작까지 우리 기술자, 연구자들이 직접했다. 원인 파악, 수리 과정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연구원들이 누리호를 성공시키려는 열정 때문에 밤새워서 작업한 결과로 이렇게 빠르게 발사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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