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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7·4 남북공동성명 50주년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04 18:13

수정 2022.07.04 18:13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통일부 남북대화 50년 '걸어온 길 열어갈 미래') /사진=뉴스1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통일부 남북대화 50년 '걸어온 길 열어갈 미래') /사진=뉴스1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상기된 얼굴로 TV 카메라 앞에 섰다. 곧바로 놀라운 발표문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같은 시각 북한 평양에서도 제2부수상 박성철이 똑같은 성명을 읽었다. 4일로 50주년을 맞은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KAL기 납북' '1·21 사태' 등 계속되는 북한 도발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던 국민들이었다.

발표 전에 간첩을 잡고, 보내던 이 부장과 박 부수상이 극비리에 '적진'(敵陳)을 오갔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더욱 놀랐다.
2014년 통일부가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1972년 5월 29일부터 서울을 방문한 북한 박 부수상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나는 사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박 부수상은 오른쪽에, 맞은편에는 이 부장이 앉았다.

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을 제시했다. 남북은 상호비방 중지, 남북 교류, 남북적십자회담 추진, 서울~평양 직통전화 설치 등을 합의했다. 남북 사이에 분단 이후 첫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해 대서특필했다. '7·4 쇼크'라고 표현된 빅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당장 통일이 될 것 같은 기분에 들떴다. 밤늦도록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실향민 출신 술집 주인은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공짜 술을 대접하기도 했다.

합의대로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이 1972년 8월에는 평양, 다음달에는 서울에서 열려 분단 후 첫 남북 왕래라는 벅찬 결실을 이뤄냈다. 판문점을 통과해 통일로를 지나 숙소인 타워호텔로 가는 북측 대표단을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남북 대표단은 워커힐과 삼청각에서 열린 성대한 만찬에 참석,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회담은 북측의 억지 주장으로 진전되지 못했고, 결국 이듬해 8월 28일 중단되고 말았다.
통일의 단꿈을 꾸게 했던 7·4 공동성명은 거기까지였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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