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2020년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국정원법 위반(직권남용죄)과 공용 전자기록 손상죄 등이다.
국정원은 6일 박 전 원장을 고발하면서 그에게 2020년 당시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사살된 고(故) 이대준씨 사건에 대한 '첩보 관련 보고서'를 무단 삭제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박 전 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보고서를 삭제했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직권 남용' 혐의를 적용한 만큼 일단 '국정원장의 법적 권한 밖 행동'을 했다는 게 국정원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이대준씨 사건의 쟁점은 사건 발생 당시 이씨에게 '자진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다.
이와 관련 박 전 원장이 실제로 이씨 사건의 '첩보 관련 보고서'를 삭제하거나 그 삭제를 지시했다면 '이씨에게 자진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 자료를 건드린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씨 사건을 수사했던 해양경찰과 군 당국이 당초 이씨에게 "자진 월북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가 지난달 16일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서 "월북 시도를 입증할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한 만큼, 박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이 '자진 월북'이란 결론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전 원장은 7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신의 혐의 내용을 부인하며 "지금은 국정원이 '개혁'돼서 직원들도 국정원장이 부당한 지시를 하면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국정원 업무구조상 설령 자신이 관련 보고서 삭제를 지시했다고 해도 이행되지 않았을 것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반면 다른 일각에선 "첩보는 국정원이 공유하는 것이지 생산하지 않는다. 국정원이 받은 첩보를 삭제한다고 원 생산처의 첩보가 삭제되느냐"는 박 전 원장의 전날 페이스북 글을 이유로 적어도 당시 국정원 내에선 '삭제'로 간주될 만한 조치가 취해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이 박 전 원장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도 고발한 사실을 미뤄볼 때, 이미 자체 조사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진술을 확보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따라서 박 전 원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실제 '삭제' 행위가 이뤄졌는지, 그게 박 전 원장의 '권한 밖' 일이었는지 여부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논란이 되고 있는 이씨의 '자진 월북' 의사 여부는 검찰 수사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내부 전산망 메인서버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나 관련 직원들에 대한 직접 조사를 진행할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이다. 수사기관이 국가 정보기관을 전면적으로 수사하는 건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검찰이 과거 일부 대공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국정원이 미리 준비한 자료를 '임의 제출' 받는 식으로만 수사를 진행해 결론을 낸다면, 그 결과를 놓고도 계속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